국경 넘다 숨진 밀입국자들을 생각하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어느 노래 가사에 “타향살이 몇 해던가”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종종 ‘타국 산지 몇 해던가’라고 가사를 바꾸어 입 속에서 중얼거린다.

누군가는 타향살이가 고추 장초보다 맵다고 한다. 타국살이의 매운 맛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옮겨온 사람만이 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아침 대서양에 긴 낚시대 여러대를 던져 놓고 파라솔 밑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큰 자식놈이 “오늘은 큰 고기가 없을 것”이라고 한 말도 있고 해서 좀 느긋하게 낚시하려고 앉아 있으니 노인의 가슴팎에서 또 오지랍이 발동을 한다. 며칠전 텔레비전에서 본 밀입국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도 나처럼 자신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없어 미국땅에 밀입국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이들은 택사스주 국경 도시에서 240km 떨어진 샌안토니오까지 자신들을 태워다 줄 18휠 트렉터 트레일러가 ‘아메리칸 드림’으로 향한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하고 올라 탔을 것이다. 이것이 ‘죽음의 여정’이 될 줄로 상상이나 했을까.

샌안토니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피난처 도시 중 하나로 강력한 이민자 단속과 추방에 저항하며 연방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 이민자 신분을 문제삼아 체포 구금하지 않는 곳이다. 샌안토니오까지 가면 일단 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레일러 안은 오븐처럼 달아 올랐고, 폭포처럼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 에어컨은 고장 났고 환기구 4개도 모두 막혀 사람들은 벽 한쪽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차례대로 돌아가며 겨우 숨을 쉬었다고 한다.

트레일러 벽을 두들겨 대며 “물을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섭씨 38도 폭염 속에 내부 온도가 섭씨 78도까지 치솟는 찜통 트레일러 안에서 사람들은 결국 하나 둘 씩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운전사가 뒷문을 열었을때 이미 8명이 숨졌고 2명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또 20여명은 탈수증 및 심장발작 등으로 사경을 헤맨다고 한다.

운전사 자신은 무슨 화물이 실려 있는지도 몰랐고 다만 차를 어느 지점까지 옮겨 놓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고 말했다는데, 자신도 이민자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데 낚시줄에 물고기 한 마리가 걸렸다. 낚아 올리니 작은 드럼이 낚시줄 끝에 매달려 퍼덕인다. 할멈에게 자랑하려고 드럼을 들고 갔더니 할멈 역시 낚시가 잘 되지 않는 지 파라솔 밑에 들어가 낮잠을 자고 있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영감과 자식 먹이려고 음식을 만드느라 잠을 설쳤을 것이니 잠이 쏟아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밀입국자들의 비극을 생각해 본다. ‘죽음의 여정’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만이라도 앞으로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잘 살아갈 수 없는 곳들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직 ‘아메리칸 드림’이 유효하다. 이 땅은 노력한 만큼 걷어 들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그들에게 직접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타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사십시오.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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