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잠 안 오는 요즘에 드는 생각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올해 정초 우리 두 늙은이는 코코비치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그곳서 큰 아들과 만나 낚시터에 도착하여 구름 속으로 지는 해를 종종 바라보며 낚시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4년 4월 초 어느날의 일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옛일을 떠올리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 가면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힘없이 광화문에서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걸었다. 당시 나는 어느 지인을 찾아가 돈 천불만 빌려 달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결국 빈 손으로 미국에 왔다.
그때 남대문에서 바라본 한 현판에는 '수출 100억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1977년 12월 22일 한국은 마침내 100억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했다. 목표보다 3년을 앞당긴 것이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던 해 연간 수출액이 5천만 불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이곳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대화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면 한국 경제가 오늘날 같이 급성장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당신같은 자동차 정비공이 무엇을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듯 나의 말을 단칼에 막아 버렸다. 그러면서 민주화만 되었으면 그 보다 훨씬 더 빨리 경제가 성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이 옳다고 했다.
우리 말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비빌 언덕이 없었던 가정이나 사회에 비빌 수 있는 언덕을 모든 국민에게 단 시간에 만들어 줄 수 있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큰 아들이 나와 좀 떨어진 곳에서 큰 조기같이 생긴 윗피쉬를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윗피시는 살이 연하여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다. 다른 날 같으면 지금 같은 시간에는 갈치를 여러마리 잡았을 텐데 한 시간이 지나도 입질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때 할멈이 고함을 친다. 갈치를 잡은 것이다. 아직도 갈치가 잡힌다는 것이 신기하다. 갈치, 블루피쉬, 윗피쉬 등 혼자서는 들지 못할 만큼 고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낚시를 갔다오면 그날 밤은 피곤하여 잠을 잘 잔다. 그런데 한 잠 자고 깨면 이런 저런 생각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맴돌아 잠을 설치게 된다. 특히 낚시하면서 떠오른 한국 생각이 이어지면서 결국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지금 한국은 사공이 없는 배와 같다는 내용의 신문을 읽으며 늙은이 오지랍이 또 발동한다. 한국의 어느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안되면 혁명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했다.
이 노동자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어찌하여 사이비 교주와 그의 딸 최순실 같은 사람을 믿었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난밤 낚시터에서 한국여자와 결혼한 지 32년이 되었다는 백인 경찰도 지금 한국의 사태가 우려된다고 했다. 그러나 어려서 이민온 큰아들 놈은 일언반구가 없었다. 한국에서 우루과이 전 대통령 무히카 같은 청렴한 지도자가 나오게 하려면 한국인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한국에서 하루속히 김영란법이 정착하기를 바라는 것도 이같은 생각 탓이다.
한밤중에 일어나 한국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은 늙은이 오지랍이니 잠이나 다시 청하자고 신문을 내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