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image

눈 감은 정의

KoreaTimesTexas | 미국 | 2017.01.20. 23:38

Web_picture_s.jpg

[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눈 감은 정의

 

한국을 강타한 인문학 서적 중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다. 이 책에는 7,000명도 되지 않는 하버드대 학부생 가운데 무려 1,0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마이크 샌델 교수의 강의내용이 생생하게 적혀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에 ‘정의’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은 특정한 상황을 설정해 ‘행복의 극대화’ ‘자유존중’ ‘미덕의 추구’라는 세가지 범주 안에서 각각의 정의론이 지니는 오류를 증명해낸다. 

저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독자를 고민에 빠뜨린다. 독자들은 선택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례 속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빠른 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저 앞에 인부 다섯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열차를 멈추려 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 세울 수 없다.
이 때 오른쪽에 비상철로가 눈에 띈다. 그 곳에는 한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다.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린다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또다른 상황이다.

당신은 플랫홈에 서 있는 제3자다. 저 쪽 끝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철로 끝에는 인부 다섯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비상철로가 없다. 영락없이 다섯명의 인부들이 죽게 생겼다.
그런데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 만한 남자가 서 있는 걸 발견한다. 당신은 그 사람을 철로 위로 밀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명의 목숨은 건질 수 있다.


첫번째 예에서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명의 목숨을 건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답했다면, 두번째 예에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 서 있던 남자를 밀어뜨려 죽임으로써 다섯명을 구하는 게 옳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밀어서 죽게 하는 행위는 아무리 바람직한 이유를 내세워도 잔인해 보인다.
 

답없는 문제들의 답을 내기 위해 골몰하게 하고, 벤담의 공리주의와 칸트의 자유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주의 등 전문적인 정치철학들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이 책은 결코 쉬운 내용의 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은 한국사회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의 저변에는 정의에 대한 갈급함이 자리하고 있다.병에 걸렸을 때 건강이 더 크게 보이듯 만연돼 있는 부조리와 부당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정의’를 갈구하게 만든다. 거대 권력의 부정의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의 고뇌와 반성이 만들어낸 ‘대리만족’인지도 모른다.


정의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혹자는 공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린 것이라 하고 혹자는 왜곡된 판결에 대한 풍자라고 한다.
정의의 여신은 왜 눈가리개를 했을까. 진실과 정의를 분별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항하지 못해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지난 19일, 대한민국 법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작은 촛불 하나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대권력에 대항해 이뤄낸 약자들의 ‘정의’가 또다시 무너졌다. 법은 불평등했고 상식은 법에 의해 파괴됐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의 여신은 돈 앞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법원에 의해 강탈당한 정의, 재벌에게 굴복한 정의.

권력의 썩은내가 진동하는 눈감은 정의가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

 

달라스 독자들이 인정하는

[최윤주 칼럼] 더 보러가기

  • |
  1. Web_picture_s.jpg (File Size:50.1KB/Download:39)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함석헌의 기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필화 70년 14] 사상계에 “6·25는 미·소의 꼭두각시 놀음” 글 쓴 함석헌, 보안법 구속   ▲ 1965년 8월14일 서울 을지로 대성빌딩에서 한일협정 비준 반대 강연 후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던 함석헌을 경찰들이 연행하고 있다. 종교사상가이자 민주인권운동가, 문필가인 함...

    함석헌의 기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눈 감은 정의 file

    [i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눈 감은 정의   한국을 강타한 인문학 서적 중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다. 이 책에는 7,000명도 되지 않는 하버드대 학부생 가운데 무려 1,0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마이크 ...

    눈 감은 정의
  • 오바마, 작별의 인사대신 다시 만나요 file

    ‘위대한 은퇴대통령’ 보인다   뉴스로=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만일 오바마가 후계자(?)로 힐러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것이 누가 됐더라도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트...

    오바마, 작별의 인사대신 다시 만나요
  • 트럼프 정부에 바라는 한반도 평화

    [시류청론] '고립주의' 한국에 기회일 수도… 3월 키리졸브 훈련 재개 큰 관심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도널드 트럼프가 20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트럼프는 후보시절 무기산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대북 강경론자 클린튼 후보와는 달...

    트럼프 정부에 바라는 한반도 평화
  • 이재용 있는한 삼성제품 안쓰겠습니다 file

    박근혜탄핵은 재벌해체로 마무리!   뉴스로=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세월은 살과 같이 흐른다더니 뉴욕에 거주한지 어느새 14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다보니 삼성 현대 LG와 같은 재벌기업들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

    이재용 있는한 삼성제품 안쓰겠습니다
  • 트럼프의 '트윗 정치', 김정은에게 놀아난 꼴

    [박영철의 국제 경제 읽기] '트위터의 헤밍웨이' 트럼프가 무서운 이유 (페어팩스=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학교 교수) =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트위터는 종종 지진과 같은 파괴력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혼합한다. (트위터 광인 대통령 당선인이 받는 가장 ...

    트럼프의 '트윗 정치', 김정은에게 놀아난 꼴
  • 한국 재벌을 해체해야 할 이유 file

    박정희 부정축재위해 재벌 키워   뉴스로=김태환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특검이 16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 공여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발표하면서,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한국 재벌을 해체해야 할 이유
  • 오바마 고별연설 현장에서 file

    ‘4년더’ 외치는 청중속 ‘한국촛불’ 떠올라   시카고=뉴스로 윌리엄 문 특파원 moonwilliam1@gmail.com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 고별연설이 시작된 지 2-3분이 지났을 때 관중석에서 ‘약간의 소란’이 벌어졌다. 금발 백인 미인 여자가 의자에 벌떡 올라서서 배너...

    오바마 고별연설 현장에서
  • 대답해 드리지요 스님 file

    소신공양한 정원스님을 위한 추모시   by 송경동시인         다시는 추모시를 읽으며 무너지고 싶지 않아.   다시는 짓밟히고 끌려가는 이들을 보고 싶지 않아. 다시는 저- 고공 농성장 아래에서 피눈물 흘리고 싶지 않아.   박근혜라는, 권력이라는, 재벌이라는, 특권...

    대답해 드리지요 스님
  • 박근혜는 여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file

    대한민국 여성들을 모욕한 그녀   뉴스로=앤드류 임 칼럼니스트 andrewhjlim@gmail.com     30여년 전 내 누이는 모 외국계 기업에 취직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부장까지 승진한 적이 있다. 결혼을 해서도 한동안 그 기업에서 간부로 일했다. 영어가 매우 뛰어났고 영...

    박근혜는 여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 상부 명령과 양심 명령 사이에 끼일때 file

    신변 안전 택하는 공무원 많은 나라, 앞날이 어둡다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명령 복종과 인간애 세계제 2차전이 한창이던 1840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리트아니아의 일본 영사관 앞에는 유대인들이 대거 집합했습니다. 한달 후면 ...

    상부 명령과 양심 명령 사이에 끼일때
  • “박 대통령은 어쩌자고 최순실을…” file

    [이민생활이야기] 잠 안 오는 요즘에 드는 생각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올해 정초 우리 두 늙은이는 코코비치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그곳서 큰 아들과 만나 낚시터에 도착하여 구름 속으로 지는 해를 종종 바라보며 낚시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4년...

    “박 대통령은 어쩌자고 최순실을…”
  • "사드로 북핵 못 막아, 평화체제 구축이 정답";

    [시류청론] 미사일 세계 권위자 포스톨 교수, 한국 정부에 권고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작년 8월초 북한이 주일 미군 사드 기지에서 가까운 서부 일본 동해 해상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노동미사일 화성 7호(최대 사거리 1300km) 2발을 발사했다. 그...

    "사드로 북핵 못 막아, 평화체제 구축이 정답";
  •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file

      [i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1960년대 한국에서는 대학을 가리켜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자식에게 대학교육을 시킨데서 유래한 말이다.  신성한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여 ‘상아탑’이라는 귀한 이름을 붙이던 대학교육...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 두날개 잃은 반기문의 한국대선 도전 file

    허망한 용꿈이 깨는 날   뉴스로=김원일 칼럼니스트 moskvanews.kim@gmail.com   반기문이 12일 귀국 일성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반기문은 이전까지 한번도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었지만 동시에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명시적으...

    두날개 잃은 반기문의 한국대선 도전
  • 발가벗을 각오 하셨나요? file

    반총장의 걱정되는 ‘환향’   뉴스로=노창현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반기문(潘基文) 전 유엔 사무총장이 마침내 12일 환향((還鄕)합니다. 제가 반 전 총장을 처음 본 것은 2005년 외교부장관 시절 뉴욕 총영사관에서였습니다. 워낙 많은 동포 인사들이 자리...

    발가벗을 각오 하셨나요?
  • 한국에 기본소득, 미국에 트럼프의 럭비공(2) file

    [2017년 전망] 트럼프의 '6% 성장 공약' 달성 가능성 희박 (페어팩스=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 교수) = 이제 미국 경제의 전망을 짚어보자. 억세게 운 좋은 트럼프: 지난 2016년은 미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억세게 운 좋은 해였다. 다음 4가지 이유...

    한국에 기본소득, 미국에 트럼프의 럭비공(2)
  • 크리스마스 때 간 친구의 죽음 file

    뉴스로=이계선 칼럼니스트/소설가     2016, 성탄절은 즐거웠다. 사랑을 원 없이 받았고 사랑을 원 없이 줬다.   성탄절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따르릉 따르릉. 상쾌하게 울리는 벨소리. 웬 반가운 까치가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올까?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

    크리스마스 때 간 친구의 죽음
  • 한일장관 무서명 위안부합의 파기당연 file

    천인공노할 아베정권 '원혼의 바람' 불것   뉴스로=윌리엄 문 칼럼니스트 moonwilliam1@gmail.com       가해국 일본 아베 총리가 부산 소녀상이 부산 총영사관 앞에 세워지자마자 때를 기다려 지난 9일 주한 일본대사와 주한 일본 총영사를 소환하고 일제 피해국 한국 ...

    한일장관 무서명 위안부합의 파기당연
  • 작은 정성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잘못 놓인 돌 하나 바로 놓아도 이웃에 큰 이득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제가 오래 전에 대전에 3년간 사는 동안 반가운 손님 한사람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진해에서 찾아온 50대 중반의 손님은 옷차림이나 품위가 어엿한 ...

    작은 정성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