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기에 접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평생 동안 

삶의 지침이 되어왔다. 몸속엔 철분이 있어야하고 

머릿속엔 철학이 있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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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국어책에「페이터(Walter Pater)의 산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고 이는 당시 이양하 서울문리대 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 AD 121-180)의 명상록을 부분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도록 소개한 글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 BC 27년부터 AD 476년까지의 503년 중에서 AD 96년에서 180년까지의 5현제 기간 중 맨 마지막 황제로 AD 161년부터 180년까지 재위했다. 견인주의(堅忍主義) 즉 금욕주의(禁欲主義)를 표방하는 스토아학파(Stoicism)의 철인(哲人) 황제로 그의 저서 명상록(冥想錄)은 황제로서의 미진했던 업적 을 보상하고 인류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어 선생님은 페이터의 산문을 배우는 시간에 산문 내용을 다음 주 국어시간까지 전부 외워오라고 주문했다. 물론 학기 성적에 반영할거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 문장이 왜, 얼마나 유명하기에 그런 숙제까지 부여하는가하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일단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학교 등하교 시간에 걸으면서 문장을 외워나갔다. 다음 국어시간이 되어 외워온 사람 발표가 있었는데 의외로 나 혼자 전 문장을 외워 발표하게 되어 우쭐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사랑하게 된다. 소년기에 읽었던 문장이라 그 뜻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터이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 60여년을 살아오면서 나의 인생관이나 삶의 이정표에 명상록의 내용이 일정 부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옛날 외웠던 문장을 세상살이의 실제 상황과 대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진실로 사후(死後)의 명성에 연연하는 자는 그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의 하나하나가 얼마 아니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추종자들에 의하여 재임 중 동상이 건립되었는데 역시 재임 중 동상이 밧줄에 매어 끌려 다니는 수모를 겪었다. 그를 떠받들던 무리들도 이슬처럼 모두 사라져버렸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 건립되어 있는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은 사후 몇 백 년이 지난 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건립 된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의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너의 식구들도 너의 원수도 너를 헐뜯고 비웃는 자도 얼마 아니하여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무한한 물상(物象)가운데서 네가 향수한 부분이 얼마나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용된 시간이 얼마나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작은 것인가를 생각 하라.”

 

작금의 한국 사회는 천년만년 영화(榮華)를 누릴 것같이 승자로 남기위해 서로 물고 뜯는 이전투구(泥田 鬪狗)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스럽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던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흙 속으로 묻힐 사람들인데…… 우리가 단일민족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공사를 막론하고 싸움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에는 때때로 그들의 분노와 격렬한 패기로 오늘까지 알려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전진의 자취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자. 그야말로 먼지요, 재요, 이야기요 신화이거나 아니 어떡하면 그만도 못한 것이다.”

 

‘나에게 불가능은 없 다’고 호언장담하던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을 평정하고 러시아까지 침공하였으나 텅 빈 모스크바도 다스리지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수많은 병사 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채 퇴각하고 말았다. 그 영웅도 결국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채 52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전쟁광이었던 히틀러는 어떠했던가? 독일 민족에 의한 유럽 제패를 실현하고자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러시아를 정복하고 유럽을 지배한 다음에는 미국을 타도하여 세계를 손아귀에 넣겠다는 망상을 하였지만 수백만의 목숨만 앗 아간 채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에 자살하고 말았다. 

 

“철인(哲人)이나 법학자나 장군이나 정치가들이 우러러보이면 이러한 사람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라. 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때에는 네 조상 중의 한 사람, 옛날의 로마 황제의 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네 자신은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험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높은 지위에 오르면 한 없이 그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나머지 권력을 남용하고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축적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구렁텅이로 빠져든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2016년 하반기 이후 요동친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나쁜 인물로 회자되고 있는 범죄자들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 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 날의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한 판단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로 데려 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데로 무대에서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 막으로 극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너를 물러가게 하는 것도 선의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사람 이 탐욕을 다스릴 수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자기의 물러날 때를 알아차리고 자연에 따라 사는 지혜를 지닌 사람은 현자(賢者)이다. 몸속엔 철분( 鐵粉)이 있어야하고 머릿속엔 철학(哲 學)이 있어야…  ….   

 

칼럼니스트  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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