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연말이 되면 마음이 헛헛하다. 한 동안 그렇다. 

 

한국에 있을 때는 추운 날씨와 뭔가 쓸쓸한 회색의 겨울날들이 더 그렇게 느끼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계절이 반대인 뉴질랜드에서는 가끔 한 해의 중간에 있는 7,8월의 겨울에 연말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겨울이 연말인 것에 그만큼 익숙해져서 살았고, 익숙한 것의 힘은 그만큼 위대하다. 

 

그래서인지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한해의 마지막 날마저도 나는 쉽게 연말을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유난히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의 12월도 한몫하는 듯하다. 춥고 서늘하지 않은 날씨는 확실히 연말의 헛헛함을 크게 줄여주지만 내겐 익숙한 연말의 모습은 확실히 아니다. 

 

그리고 여름 휴가의 절정을 알리는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장식하면서 화창한 날씨와 햇살은 아무리봐도 좀 안 어울린다. 아마도 여름의 눈쌓인 장식을 올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내겐 정말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한겨울의 크리스마스가 문득문득 그립다. 물론, 추위를 싫어하지만, 연말은 겨울이 정상인 것 같은 나의 협소한 마인드 셋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연말은 내내 마음이 허전하다가도, 우습게도 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나 타종을 듣고나면, 새해가 됨과 동시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뭔가 기분이 전환된다. 단지 시계가 12시를 지났을 뿐인데.. 

 

단순히 혼자만의 기분일 뿐이고, 사회적인 약속이고, 숫자에 불과한 한 해의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출발선에 선 기분을 느낀다. 분명히 1분전만해도 나는 쓸쓸하고 헛헛했었는데, 시계초를 따라 카운트 다운을 한 후 참 신기하게도 마음가짐은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채로 다시 시작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걸 느낀다. 

 

아마도 내가 쓸데없이 예민하게 느끼기는 하겠지만, 누구나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한해가 좋지 않았다면, 그 불운을 털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고, 좋은 한해였다면, 더 좋은 한해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이 어리석은 12개월의 12개 숫자를 365일만큼 365번 반복하고 다 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짓을 누가 이 사회의 법칙으로 시작하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동의하지도 찬성하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365일을 주기로 새해를 시작하고, 그 숫자는 계속 반복된다. 그러다 힘든 한해를 보낸 어느 해에 새해가 오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 다시 시작선을 그어주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것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최소한 인생이 처음인 우리 모두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리셋의 기회가 매년 주어진다는 건 고마운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나는 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와 함께 리셋되어 시작하고 싶었다. 

 

한해한해는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좋은 일이 더 많은 해일 수도 있고, 힘들 일이 더 많은 해일 수도 있다. 늘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이 인생이니까. 

 

어느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다들 이번 생이 처음이라 두렵고 낯설다. 어른이 된다고 이번이 처음인 이 인생이 쉬워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배운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은 쌓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의 나이를 살아본 것은 아니다. 이번 생에 지금 내 나이는 또 처음이고 한번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나이 한살한살은 처음이라 낯설고 어렵다. 

 

올해도 처음 살아보는 2018년도지만, 미지의 어드벤처를 경험하는 기분으로 탐험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살고있는 생명의 숫자만큼, 어드벤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다들 탐험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곁을 스쳐간다면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탐험도 성공적이기를 인사하고 격려해주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새로운 2018년의 탐험을 응원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나설 몸과 마음의 채비를 해본다. 이번 생은 처음인 당신, 2018년은 처음인 우리 잘 살아내기를… 

 

우리 모두의 2018년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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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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