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투르크화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7.png

 

아랍 침략을 받기 전 중앙유라시아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했다. 메르브를 중심으로 하는 호라산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가장 유력했지만,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와 야곱파 기독교, 그리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유대교도가 존재했음을 확인된다. 과거 박트리아 영역에서는 에프탈과 사산조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불교사원이 존속했고 마니교와 기독교 신도들도 활동하고 있었다. 한편, 마 와라 알 나흐르(‘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사이의 오아시스 지역) 주민들은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는데, 이 지역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조와 달리 토착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었다.

아랍 정복자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피정복민을 개종시키는 일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앙유라시아의 농촌 지역은 정복 후 몇세기가 지난 뒤에야 주민들이 이슬람을 수용했다. 그러나 오아시스 도시 지역의 개종은 강제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된 흔적이 확인된다.

서돌궐이 멸망한 후 북방 초원 지대에서는 투르크계 유목 집단들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세계의 노예 공급원이었다. 이와 함께 오아시스 와 초원 접경지대에서는 도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이슬람을 수용하는 집단도 출현했다. 이들 무슬림 투르크인들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편에 서서 이교도인 동족과 전쟁을 하고 노예를 약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한편 무슬림 상인과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은 초원 깊숙이 들어가 활동했는데 유목민은 정주 문명의 상품과 새로운 종교의 매력에 이끌려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신속하게 변방으로 확대되었다. 볼가 강과 카마 강의 합류지 북쪽에 거주하던 불가르에 대한 정보는 10세기 초 처음으로 이슬람 사료에 나타나는데 이때 그들은 이미 이슬람을 수용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들에게 새로운 종교를 전해준 사람은 호라즘 출신의 무슬림 상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투르크족의 이슬람화 현상은 중앙유라시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카라한조였다. ‘카라한조’라는  명칭은 근대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이슬람 사료는 이 왕조를 아프라시압조 라고 부루고 있다.  이 왕가의 기원이 어떤 유목집단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할 뿐 아직까지 정설이 없다. 840년에 몽골고원에서 위구르 지배가 붕괴된 후 돌궐지배 씨족인 아사나씨 계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카간을 칭하고 탈라스에서부터 일리 강계곡과 카슈가르에 이르는 지역에 새로운 부족 연합체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다.

 

오아시스 정주 지대의 투르크화

 

중앙유라시아 오아시스 정주 지대 가운데에서 동투르키스탄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훨씬 신속하고 철정하게 투르크화가 이루어졌다. 동투르키스탄 동부 지역의 투르크화는 840년 몽골고원의 위구르 제국 해체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서부 지역의 카라한조는 9세기 말 캬슈가르를 점령하고 이슬람을 수용한 후 11세기 초기에는 호탄, 그리고 중기에는 쿠차까지 지배영역을 넓혔다. 카라한조 영역 거주민들의 투르크화는 매우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11세기 후반에는 주민들이 투르크어로 대화할 정도였다고 한다.

동투르키스탄의 오아시스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원주민 인구도 오아시스규모에 비례하여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 이 지역에는 톈산의 율두스 계곡을 제외하면 규모가 큰 목초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이곳으로 이주한 유목 투르크족은 일찍부터 오아시스 또는 그 주변에 정주하고 원주민과 융합되었다고 할 수있다.

오아시스 원주민들은 새로운 지배자의 언어와 종교를 동시에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동투르키스탄 의 이슬람화 과정은 오히려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여러 종교에 대해 동등한 입장을 견지한 몽골 제국 지배 시기에 특히 동투르키스탄 동부 지역에서 이슬람교는 오랫동안 불교와 공존했다.

1420년에 티무르조의 샤 루흐가 명나라의 영락제에게 보낸 사절단은 투르판 주민 대다수가 불교도이고 그곳에 훌륭한 사원이 존재하며 모스크와 불교 사원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동투르키스탄에 비하면 서투르키스탄, 즉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의 투르크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이 지역은 오아시스 규모도 크고 따라서 주민 수도 많고 오아시스 사이에 유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서투르키스탄으로 유입된 투르크계 유목민이 유목생활을 하면서 오아시스 사이의 초원에 머물러 있는 한 원주민과의 접촉 정도는 상대적으로 드물었을 것이고 따라서 원주민의 언어적 투르크화 과정도 완만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어 몽골 정복과 함께 새로운 유목 집단(대다수는 투르크게이고 몽골인은 오히려 소수이다)이 서투르키스탄으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몽골제국시대부터 티무르 제국시대에 걸쳐 한편으로는 부족 조직에 소속된 전사 계층의 성격을 유지하며서 정주화의 길을 걸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더욱 더 페르시아적 이슬람 문화에 동화되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투르크어를 문화언어로 다듬어 중앙유라시아 투르크족이 공유하는 공통문어(차가타이어)를 발전시켰다.

정주화한 투르크계 유목민과 원주민의 융합이 본격화되고 동시에 원주민 사이에서도 투르크어 사용이 확대되는데 특히 도시에선 두언어를 함께 사용한 사례가 점점 일반화되어갔다.

이렇게 하여 서투르키스탄의 정주민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관계없이 대체로 똑 같은 형질적 특징과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호라즘, 페르가나, 타슈켄트 주민은 ‘사르트’라 일컬어지고 대체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마 와라 알 나흐르 의 주민은 ‘타지크’ 또는 ‘차가타이’라 칭해지고 대부분 페르시아어를 사용했지만 두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나 투르크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도 있었다. 1924년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실시된 이른바 ‘민족의 경계 획정’은 1민족 1언어 원칙에 입각하여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힘으로 부정한 사건이다. 지금의 중앙유라시아 투르크계 국가들의  언어적 투르크화 과정은 바로 이때 최종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 |
  1. 7.png (File Size:128.2KB/Download:91)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우슈토베를 다녀와서 file

      김양희(알마티토요한글학교장)         5월 20일 한글학교가 주최하고, 총영사관 (재외동포재단)과 LG가 후원한 '알마티 한글학교 20주년 , 고려인 정주 80주념 기념 역사 탐방이 있었다.   한글학교 중고등부와 학부모를 비롯하여 교민들까지 총 54명이 LG버스 두대로...

    우슈토베를 다녀와서
  • 2017년 중앙아시아 경제 전망 file

        2017년 중앙아시아 경제는 저유가 국면에서 탈출하여 소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4월 22일 IMF는 2017년 중앙아시아 경제성장 전망을 발표하였습니다. 2017년 카자흐스탄의 경제성장률을 2.5%로 예측하였고, 2018년에는 3.4%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였...

    2017년 중앙아시아 경제 전망
  • 고려인들에게 한식(寒食)이란?  “산에 가는 날(성묘하는 날)”  file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온 지 벌써 23년째인 필자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작은 ‘기억’이 있다. 바로 ‘한식’과 관련된 추억인데, 그러니까 96년 봄의 일이다.    필자는 당시 근무처인 대학 외 고려일보 기자로서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고려...

  • 대학생들의 올림픽, 알마티 동계 유니버시아드 아이스 하키, 스피... file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3학년 김정혜        2017년 1월 31일 할릭 아레나에서 치뤄진 일본을 상대로 한 아이스하키 경기와 2월 3일 메데우에서 남자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를 참관하였습니다.    저는 한인일보와 유라시아 ...

    대학생들의 올림픽, 알마티 동계 유니버시아드 아이스 하키, 스피드스케이트 참관기
  • 김상욱 발행인, 2017년 신년사 file

    "붉은 닭의 해, 과욕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조화를 유지하는 한해되시길...."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습니다.    먼저,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위에 만복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그 어느 해보...

    김상욱 발행인, 2017년 신년사
  • 전승민 주 알마티총영사 2017년 신년사 file

    [신년사] "올해는 한-카 수교 25주년, 고려인 동포 정주 80주년, 고려극장 설립 8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 한민족의 위상을 높일 계기"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알마티총영사관 전승민 총영사입니다.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총...

    전승민 주 알마티총영사 2017년 신년사
  • 러시아인, 그들은 누구인가?

    [특별기획] 러시아인, 그들은 누구인가?     전적이고 극단적인 사랑과 우정 극한 추위, 팽창과 좌절의 역사에서 형성   <이 원고는 Chindia Plus 2016년 12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해 23세인 안젤리나 니콜라우(Angela Nikolau)는 루퍼(roofer)다. 루퍼는 높은 건...

  • [기고]  홍범도 장군 묘소,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file

                                              무성한 잡초와 깨진 보도블록이 황량함 더해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 수석연구원)   <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시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소. 2016년 9월2일. 사진 = 김상욱>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 안내판.  2016.09...

    [기고]  홍범도 장군 묘소,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 창가는 애국 계몽가, 일본노래 아니다 file

      작곡가 이호섭 논문에서 밝혀     <작곡가 이호섭선생>   그 동안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불렸던 창가,  특히 7.5조 창가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시가형식으로 알려져 왔으나 일본에는 7.5조 시형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음악형식도 서양에서 도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

    창가는 애국 계몽가, 일본노래 아니다
  • 내가 본 ‘아크몰라’와 ‘아스타나’ - ’상전벽해’는 이를 두고 하... file

    <'수도의 날'을 축하하며>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 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1997년 눈보라가 치는 12월 중순, 필자는 ‘아크몰라’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 도시는 카자흐스탄...

    내가 본 ‘아크몰라’와 ‘아스타나’   - ’상전벽해’는 이를 두고 하는 말 -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3 file

    한국, 유라시아 유목제국의 역사를 밝히다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지난 25일, 이쉭박물관에서는 열린 내년 한-카 합동 발굴조사에 대한 업무협정 체결식 후 양측 대...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3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2 file

      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투르크화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아랍 침략을 받기 전 중앙유라시아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했다. 메르브를 중심으로 하는 호라산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가장 유력했지만, 네스토리...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2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6

      흉노의 쇠퇴와 분열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한나라는 고조 이래 흉노에 대해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한 무제가 즉위하면서 충실한 국력을 배경으로 적극적인 대흉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먼저, 기원전...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5

      사르마트와 흉노시대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흑해 북부연안에서 후기 스키타이 문화가 번창한 기원전 4세기 경, 카스피해 북방 초원에서는 새로운 유목민 세력이 발흥하고 있었다.  이른바 ‘사르마트’라 불리는 집단이 그들이다....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1 file

                            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소원을 빌며 나무가지에 헝겊을 묶어 놓은 모습은 카자...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1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0 file

    톈산위구르 왕국, 몽골제국 형성에 공헌하다.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지지난주 필자는 중국의 우룸치에서 이닝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오는 손님들을 마중하러 호르고스를 다녀왔다.  신실크로드 물류현황을...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10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9 file

    오아시스 농경민의 원래 고향은?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우리는  지난호까지 기원전부터 유라시아 초원에 살았던 유목민들의 역사를 훑어보았다.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9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8 file

       돌궐과 투르크 그리고 터어키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우리는  지난호(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7)까지 기원전부터 대략 기원후 5세기 정...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8
  • [양원식 전 고려일보주필의 10주기를 맞으며] [1] file

    ‘이역살이’의 외로움… 시와 글로 승화시킨 이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발행인)          2006년 5월 9일 오전, 양원식 선생이 갑자기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았...

    [양원식 전 고려일보주필의 10주기를 맞으며]
  •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7 file

    몽골고원의 원래 주인은?                                                                           김상욱(유라시아고려인연구소장, 한인일보 발행인)     <기원전후 동방의 세력자였던 흉노입니다. 몽골고원 전체를 차지하였고 한 제국에게 공물을 받았으며, 서쪽...

    특별 기획 : '카자흐스탄에서 보는 유라시아 역사'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