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가마솥이 식어 / 조기조 /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최대 경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에서 무역 개방이 줄어들었다. 국경을 넘는 상품, 서비스, 자본, 사람,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은 더 큰 경제 통합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국가 간에 더욱 자유롭게 이동하는 추세인 세계화(globalization)는 수십 년에 걸쳐 기복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일시적인 정점에 도달한 바 있다. 세계 GDP 대비 모든 경제의 수출과 수입의 합계인 무역 개방성 지표는 세계화의 지표로 사용된다.

 

산업화가 시작된 1870년부터 최근까지 150여 년간의 데이터를 가지고 IMF는 세계화의 과정을 몇 단계로 구분하였다. 1870년~1914년 까지를 산업화의 시대로 보았다. 1914년~1945년은 1, 2차 세계대전 기간으로 국제적 갈등과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어 세계화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국제연맹이 다자주의를 추진함에도 불구하고 무역 장벽과 금본위제가 통화 블록으로 붕괴되면서 무역이 지역화 된 시기이다.

 

1945년~1980년은 전후,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한 고정 환율시기로 미국은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키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배적인 경제력으로 부상하였다. 전후의 회복과 무역 자유화는 유럽, 일본 및 개발도상국의 급속한 팽창을 촉진시켰으며 많은 국가에서 자본 통제를 완화하였다. 그러나 사회 및 군비 지출로 미국의 확장적인 경제와 통화 정책은 궁극적으로 시스템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1970년대 초에 달러-금 태환을 폐지했고, 많은 국가들이 변동 환율제로 전환하였다.

 

1980년에서 2008년 까지 세계화는 아주 꽃을 피웠다. 자유화는 중국과 다른 대규모 신흥 시장 경제의 무역 장벽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구소련 블록의 통합을 포함하여 전례 없는 국제 경제 협력을 이루었다. 1995년에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협정, 협상 및 분쟁의 해결을 담당하는 새로운 다자간 감독 기관이 되었다. 국경간 자본 흐름이 급증하여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과 상호 연결성이 증가하였다. 이때에 빠르고 안정적인 컴퓨터와 인터넷이 이런 자유화를 뒷받침하였다.

 

그러다가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무역 제약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화의 미래에 좋지 않은 징조이며, 정책 입안자들이 지경학적 분열이 점점 더 증가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더 고심을 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긴장이 고조된데 따른 것이며,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 세계의 금융, 식량, 에너지 흐름이 크게 위축된 데 따른 것이다. 놀란 인도는 자국의 쌀 수출을 금지하고 나섰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취약성이 노출된 이후 경제 안보와 공급망의 탄력성을 높이는데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금까지의 이 시기를 슬로벌리제이션(slowbalization, 경제의 둔화)이라 설명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미국이 중국의 추격과 산업 발전을 막고자 반도체 등 첨단 부품의 공급을 규제하자 중국은 소재를 무기로 대응하면서 BRICS 라는 나라들을 점점 더 확대하며 세를 규합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기축 통화인 달러화로 결제하는 무역구조에서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 결과, 일부 국가간의 거래에서 위안화로 결제가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침공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러시아와 고립무원인 북한을 다독이며 러시아의 싼 가스를 수입하고 북한의 동해어장과 석탄 등을 유리하게 얻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난맥인 경제적 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금융기관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많은 대출을 해주고 그 부실로 큰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개인 투자자들도 피해를 보기는 했다. 지방정부의 무리한 개발도 문제였다. 이제 중국 정부가 대출 말고 기업으로 하여금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을 권장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이나 지방 정부, 국가가 부담을 더는 대신 국민 모두가 투자자로서 수익과 위험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주식의 발행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원리금의 상환 의무가 없기 때문에 투자자 모두가 골고루 위험 부담을 하는 자본시장이다. 당연히 전망 없는 기업엔 주식이 소화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아이디어, 상품, 서비스, 자본이 국경을 넘는 흐름을 통해 세계 경제가 얽히는 세계화가 성장해 왔다. 기술,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인해 이러한 추세는 급속히 진행되었고 동시에 기업들은 공급망과 “적시” 물류를 간소화하기 위해 혁신을 이루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에도 소비자의 선호도 변화, 신흥 시장의 구매력 증가, 관세 등 지정학적인 변화, 외국인 투자자들의 꼼꼼한 분석, 기술 무역에서 국가 안보 민감도의 증가 등으로 세계화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것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적 상호의존의 함정을 더욱 드러냈고, 원재료와 생산품을 본국으로 옮기거나 가까운 지역으로 옮기고 경제적 동맹국으로부터 재화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Morgan Stanley Research의 한 연구보고서는 “우리는 이러한 힘이 정부와 기업이 가치 사슬을 위한 온 쇼어링, 니어 쇼어링 및 프렌드 쇼어링에 상당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멕시코, 인도, 베트남, 터키는 미국과 EU 기업이 가치 사슬을 다양화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국가로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세계 공장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대안으로 아세안 14개국, 알타시아(Altasia)가 등장하였다.

 

‘슬로벌리제이션(slowbalization)’은 ‘Slow(천천히)’와 ‘Globalization(세계화)’이 합쳐진 말로 ‘세계화의 쇠퇴’나 ‘경제의 둔화’를 의미한다. 국가 간 무역, 자본회전, 투자, 정보교류 등 세계화와 관련된 지표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진해진 현상을 뜻한다. 세계화가 정체 수준에 이르게 된 까닭은 재화의 이동 비용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게다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과 그 후에 이어진 미·중 무역갈등,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통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슬로벌리제이션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는 가마솥이다. 잘 식지도 않지만 달구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우리 모두가 먹고 살아야 할 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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