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타이거 맘’이라하면 자식 하나 제대로 키워보려고 모든 것을 바치는 억척 엄마를 말한다. 재능이 있는 지는 고사하고 두어 살부터 피아노나 바이올린, 아니면 무용이나 피겨 스케이팅을 위해 학원을 보내거나 체육관의 매트위에서 놀게 하는 엄마들이 있다. 다행이도 자녀가 순응하여 성공한 경우가 있지만 실패한 사례는 이루 다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아무런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아주, 아주 한 번은 내가 타이거 맘을 만나 무언가를 억지로라도 배우고 그래서 유명하게 되었더라면 하고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지는 봉숭아나 콩깍지 속의 콩도 튀면서 어디론지 모를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새들이 쪼아 먹은 열매도 어디에서 똥을 거름삼이 자라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산골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자가용인 내 지게를 지고 다녀야 했던 운명이었다. 이제 와서 보면 그게 지금까지 내 두 다리와 등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지난 한 달을 멀리 떠나 있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가 보았다. 물론 먹고 잘 집은 정하고 갔다. 혼자서 거리를 걷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원은 찾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영어가 안 통하니 말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로 살았다. 그러던 중, 뜻밖에 지인으로부터 우즈벡에 있는 어느 작가의 수필집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것과 마침 내가 거기에 있으니 축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에 넙죽 받아들였다. 책은 “우즈베키스탄에 꽂히다”를 출간한 “라운드어바우트” 출판사에서 발행했고 작가 최희영이 흙속의 진주를 캐어낸 것이다.

 

33세의 아가씨 작가, 김가영이라기에 뜻밖이다 싶었는데 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맨 먼저 스티븐 호킹 박사를 떠 올렸다. 그 몹쓸 병이 호킹 박사를 힘들게 했지만 어렵게 쓴 “시간의 역사”를 읽으면서 탄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 가까이에서 떠 오른 사람은 내가 일했던 경남대학교 근처에 사는 카투니스트(cartoonist) 지현곤이다. 61년생이라는 그는 어려서 척추결핵을 앓았고 걸을 수가 없어서 집의 조그만 다락방에서 지내게 된다. 휠체어도 없는 옛날이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다락의 조그만 창 너머로 보이는 우주를 그리며 날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이 빌려다 준 만화책을 닳도록 보고 또 보고는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종이에 점을 찍어가며 그리기를 수십 년, 마침내 경지에 올랐다. 2008년에 40년 만의 외출이라는 작품집이 나왔고 미국, 뉴욕의 유명한 갤러리에 초청받아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피아니스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다. 마침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아니, 홀로코스트와 당시 유대인들의 운명에 대해 어떤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던 때였다. 집중과 몰두의 결과다.

 

[구두와 함께 샀던 운동화는 어느 날 도둑을 맞았다. 외출하려고 보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운동화가 없어졌다. 집에서 일하던 어떤 분의 소행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내 신발을 훔쳐 갈 수 있냐며 십리도 못가 자빠질 거라며 울분 섞인 악담을 했다. 그날 나는 실내화를 신고 외출해야 하였다.]

 

[집안에서 신발을 도둑맞은 사건은 어쩌면 운동화의 소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에게 은근한 미움을 받으며 벽장 안에 갇혀 빚도 못 보던 운동화는 매일 소원을 빌었을 거다. 나를 이곳에서 꺼내 줄 사람을 새 주인으로 맞게 해 주세요. 그리고 운동화의 소원이 이루어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어느 날은 내 벨크로 신발을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 사람을 봤다는 소식을 들었다. 금색 운동화가 아주 반짝거렸다고 하였다. 나를 떠나서 그렇게 잘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다. 너라도 소원을 이루어서.]

 

신발을 도둑맞고는 ‘휠체어에 앉았으니 신발인들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그런 신발에게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을 주인으로 맞아 기쁘리라’는 생각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가끔 내 방을 방문하는 이들은 생뚱맞게 자리 잡은 구두를 보며 의아해한다.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채 표정에 물음표만 잔뜩 달아 괜히 구두를 한번 만져 본다. 20살의 가영이는 구두가 신고 싶었대요. 신고 싶어서 신어봤고, 이제는 바라보고 싶어 매일 봅니다. 책들 사이 홀로 서 있는 구두는 글자 없이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그 누구도 슬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나도 슬프지 않으니 그저 작은 돛이 달린 동의의 끄덕임 한 번이면 좋겠다. 그게 내 섬의 배 한 척이 될 테니까.]

 

하이힐이 신고 싶어 굽 높은 뾰족구두를 사서 신어보니, 퉁퉁하게 살찐 발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억지로 쑤셔 놓고 보니 발은 아프고 모양도 나지 않았다. 이걸 어쩌나? 다시는 신을 수 없지만 한 번은 쑤셔 넣어서라도 신어 보았던 이 구두를 여전히 책장에 간직하고 있다. 작가 최희영은 이를 책 제목으로 뽑았다. “책장 속 그 구두는 잘 있는, 가영?”

 

[가끔 행복한 꿈에서 나는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구두를 신고 해변을 걷는다.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적시며 느낌표를 닮은 발걸음을 모래 위에 새기며, 이제는 기다림이 아닌 다가감의 차례다. 구두를 실은 작은 조각배에 장대를 세우고, 흰 천을 묶어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길목에 세워 두면 돛이 팽팽하게 곡선을 그리며 멀어진다. 어딘가에서 자꾸만 커지고 있을 외딴섬을 향해. 어쩌면 어렸던 나의 섬을 향해.]

 

독수리 타법이라고 말한다. 작가 김가영은 검지 두 개로 콕콕 쪼듯이 자판을 누르는 그 속도로 메꾸어 나가지만 글이 탄탄하다. 내공이란 적어도 1만 시간은 지나야 싹이 나는 법이다. 쉬지 않고 매일 한 시간씩을 연습해도 1년이면 365 시간이고 10년이면 3,650 시간이다. 거의 30년이라야 1만 시간이 된다. 이게 쉽겠는가? 하루 3시간씩을 집중하고 몰입하면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말이 쉽지 얼마나 오래 집중할 수 있던가? 근 무력증이 언제 얼마나 쌤통을 부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을 깨치고 난 이후의 근 30년을 집중한 시간이 이제 누에가 실을 토하듯 하고 있다. 날 지어다, 가영! 마음껏 날아 소원을 이루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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