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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핀 연노랑 감꽃
 

어둑한 새벽녘, 눈이 떠지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바람에 뒷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감나무 아래깨를 지나다보니 얼핏 누르스럼한 것들이 여기 저기 나풀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밤중에 후두둑 비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떨어져 내린 감꽃잎들이었습니다.

어렷을 적 농촌마을에서 자라면서 감꽃잎을 주으러 갔던 일이 떠오릅니다. 머슴을 여럿 두고 살던 조 부자네 농장집 울타리 안쪽에는 어른키 너댓 배 길이도 더 되는 감나무들이 여럿 심겨져 있었습니다.

어둑어둑 새벽녘, 앞집 동갑내기 동무와 울타리깨로 살금 살금 허리 숙이고 가서는 별처럼 떨어져 있던 감꽃잎을 주었습니다. 실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거나, 싱싱한 놈들은 따로 골라 입에 털어넣고, 남은 감꽃잎으로 쌈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손과 입은 감꽃 향기로 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지금 감꽃잎을 줍는 아이들은 없을 겁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공상과학의 세계에 흠뻑 젖어 사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이 감꽃잎을 줍지 않는 세상, 참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다보니 어느새 어스름이 물러가고 마르지 않은 감꽃잎이 잡풀 사이로 숨어들고 있었습니다. 놔두면 불개미 녀석들의 밥이 되거나 쨍쨍 햇볕에 비틀어져 버릴 터입니다. 갈퀴로 살살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감꽃잎 향기까지 쓰레기통에 섞여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더 움찔거려 집니다. 이 앙증맞은 것들이 겨우 사나흘 달려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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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감꽃잎.
 

하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꽃이 져야만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섭리를 어느 식물인들 거부할 수 있겠나요. 아무리 온몸을 흔들어 거절해도 꽃잎은 나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꽃이 끝내 꽃이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섭리에 대한 반동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잎이 나고 꽃이 필 때가 있는가 하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마냥 서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꽃잎은 꽃잎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잘 맺어서 누군가의 먹잇감이 되는 것도 보람있는 일일 것입니다.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고 누군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인생. 살아볼만 합니다. 올가을 잘 익은 홍시감을 이웃들과 호로록 맛보며 연노랑 감꽃잎 향기를 기억하겠습니다.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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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자리에 열려서 자라고 있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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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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