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박사 사반세기 Phila 자택

‘삼일혁명 100주년’ 미국내 독립운동 성지를 찾아서(4)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 시리즈>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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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군인, 혁명가, 언론인, 계몽가, 정치가, 의사, 병리전문의, 교수, 시인, 소설가, 작가, 사업가, 독립운동가.

 

이 모두가 한 사람의 직업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그는 또한 조선의 관군으로 복무했고 미군의 징병검사의무관이기도 했다. 참전한 전쟁은 19세기말의 甲申政變(갑신정변)과 미국-스페인 전쟁,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다.

 

격동의 근세사를 온 몸으로 겪은 그이처럼 드라마틱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대한 민족의 선각자, 송재 서재필 박사(1864-1951)의 인생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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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박사는 1880년 18세에 과거급제를 한 조선의 무신이었고, 약관(20세)에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박영효 등과 함께 자주자강의 근대국가를 세우고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혁명가였다. 갑신정변이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가며서 일본으로 피신했지만 지속적인 암살 시도로 미국 망명을 택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인종차별도 심한 19세기말의 미국에서 적수공권의 맨주먹으로 돈을 벌며 공부해 최초의 한국출신 시민권자가 되었고 정식 의사면허까지 따냈다. 1882년 조정의 거듭된 요청으로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 복귀한 그는 민초들을 깨우기 위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만들었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백성을 일깨우며 외세를 배격하는 그의 활동에 긴장한 일본과 러시아 등의 압력으로 1895년 미국에 돌아갔지만 여생을 모국의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진정한 애국자였다.

 

펜실베니아주 미디아(Media)는 필라델피아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소도시다. 이곳엔 미주한인독립운동의 상징인 서재필 박사가 1925년부터 별세한 1951년까지 살았던 주택이 있다.

 

아직은 늦여름 볕이 따가운 지난 9일 서재필 기념관을 찾았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집은 정면에서 보면 2층이지만 측면에선 다락방까지 3층 구조로 돼 있다. 서재필 박사의 둘째따님 뮤리엘 여사가 타계한 이후 한때 미디아 시에 기부된 것을 뜻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인수해 1990년 서재필기념관으로 개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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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언덕배기에 위치해 아름다운 야생의 綠地(녹지)를 내려다보는 기념관은 적요했지만 보통의 미국 집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미국의 가정집에선 보기 힘든 키 큰 대나무들이 울타리를 겸해 서있기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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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안내한 백아현 선생은 “서재필 선생님은 외가가 있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셨는데 기념관을 조성하면서 보성의 유명한 대나무 숲이 연상되도록 심었다고 해요” 세월의 흐름과 함께 20m 높이로 훌쩍 커버린 대나무들이 이국속의 모국같은 풍경을 떠올리는 셈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쪽 거실엔 서재필 박사의 초상이 걸려있고 20분짜리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는 시사실도 갖춰 놓았다. TV 오른쪽엔 미국 우정국에서 발행된 서재필박사의 기념우표가 시선을 끌었다. 서재필 박사의 이미지로 가장 널리 알려진 肖像(초상)은 지금은 고인이 된 서박사의 둘째 딸(뮤리엘)이 직접 고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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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바깥쪽으로 연결되는 선룸 창 너머로 작은 화단이 보이길래 물었더니 “몇년전엔 너른 백야드에 태극기 문양의 작은 꽃밭을 만들었는데 극성스런 사슴떼로 인해 배겨나질 못하네요”하고 아쉬워 한다.

 

거실과 1층 침실, 2층 침실 두곳 등은 서재필박사의 생애를 근대개혁운동, 독립운동, 통일민주국가 수립운동, 가족과 생활 등 크게 4개의 전시실로 구분했고 벽면 전체를 개화운동, 계몽운동 등 소제목을 붙여 관련 사진들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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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조국이 일본에 강점되어 실의와 비탄에 잠긴 서재필 박사는 1919년 들려온 삼일만세운동에 감격, 그때까지 모아온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삼일운동 직후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개최해 독립의 열망을 알렸고 미국의 21개 지역에 교분이 두터운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국친우회’를 결성해 전 세계에 한국의 독립 여론을 확산시켰다.

 

구미위원부와 워싱턴군축회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미국과 조선의 여러 언론에 수많은 글을 기고해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다. 인쇄 및 문구사업(필립 제이슨 회사)으로 한때 종업원 50명을 고용할만큼 번창한 사업도 독립운동자금으로 아낌없는 쏟아부어 결국 1924년 파산하기도 했다.

 

그는 유한양행 창업자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유일한 박사와 친분이 돈독했다. 그가 독립운동 재원확보를 위해 1925년 유일한 박사와 意氣投合(의기투합)해 New Ilhan Company 필라 지사를 만들어 사장에 취임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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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그는 둘째딸 뮤리엘과 함께 1947년 미군정의 최고고문 자격으로 귀국, 민주적이고 통일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신명을 다했다.

 

서재필박사의 침실로 사용된 2층 왼쪽 전시실엔 귀국할 때 짐을 꾸린 궤짝형태의 낡은 가방이 전시되고 있다. 배편에 짐을 실을 때 표기한 듯 정면엔 영어 이름(Dr. P Jaisohn)과 거주지(Media PA)가 하얀색 글씨로 쓰여졌고 상단엔 입항한 지역이 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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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총선거를 앞두고 서재필 박사는 통일정부 수립을 촉구했다. 그 무렵 각계 인사들이 서재필 박사의 대통령 출마를 요청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요청서는 정계 언론계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총 1929명이 참여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대한독립당 당원자격으로 친필 서명한 요청서가 이 방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서재필 박사는 그해 7월 4일 발표한 성명에서 “관직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으며 설령 제공된다 하더라도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 인해 남한 정계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대통령 출마를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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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시절 제자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노골적인 권력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분단된 조국의 대통령을 평생 독립된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꿈꿨던 노년의 애국자가 마음에 둘리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친일반공노선과 독재통치가 초래한 훗날의 비극을 돌이키면 오직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가득한 서재필 박사가 대통령 출마를 수락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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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서재필재단 1975년 설립

 

도심 한 가운데로 아름다운 트롤리선이 가로지르는 미디아 시는 미국 최초의 자유무역 도시인 델라웨어 카운티(Delaware County)에 있다.

 

1965년 이후 미국 이민문호가 확대됨에 따라 필라델피아 지역에도 많은 한인동포들이 이민을 오기 시작했다. 동포들은 미국 정착과정에서 언어적,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문제 또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1975년 필라델피아 지역내 8명의 의사들은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을 활동하다가 他界(타계)한 애국지사 서재필 박사의 숭고한 얼을 계승하여, 같은 민족으로서 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본 재단설립을 위해 서재필 박사의 장녀 스테파니(Stephanie Boyd) 여사와 차녀 뮤리엘(Muriel Jaisohn) 여사도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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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기념재단은 1975년 펜실바니아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인가를 받아 비영리 단체(501(c)(3))로 설립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미국 시민권과 의사면허를 취득한 서재필 박사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재단은 처음에는 한인 동포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원으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증가하는 동포 이민자들의 미국 정착을 폭 넓게 지원하고자 사회복지, 교육 및 문화 서비스 등의 분야로 그 활동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재단은 1986년 서재필 박사가 1925년부터1951년까지 26년간 살았던 펜실바니아주 미디어(Media)시에 위치한 주택을 매입후 보수 과정을 거쳐 1990년에 서재필기념관(Jaisohn House Museum)으로 개관했다.

 

재단은 “구한말 자유독립을 위한 민중계몽은 서재필이 추구한 주요 활동 중에 하나로 지난 40여년간 재단은 교육 및 장학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1976년 전북 개정 간호대학교 학생 1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100여명(2016년 기준)의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이들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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