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 <2>

‘3여래2조사’ 사리 세계 유일 성물

MB정부 “사리구도 달라” 환수 거부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시리즈>

 

 

Newsroh=민지영기자 newsrohny@gmail.com

 

 

라마탑형 사리구.jpg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구

 

 

모든 것은 2008년 11월 13일 시작되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당시 사무총장 혜문 스님(봉선사)이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에서 ‘회암사유물반환추진위’를 결성하고 출범식을 가졌다.

 

조선왕실 의궤(儀軌) 등 해외에 불법 반출된 국보급 문화재 환수로 잘 알려진 혜문스님이 이날 회암사 유물 환수 대상으로 거론한 문화재중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구’였다. 이 사리구는 1939년 일제에 의해 도굴(盜掘)돼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사리구가 특별했던 것은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나옹선사 지공선사의 사리, 부처님 제자인 정광불, 가섭불의 유리사리 등이 함께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3여래 2조사’의 사리가 한꺼번에 봉안된 사리구는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구멍뚫린 나옹스님 사리함.jpg

구멍 뚫린 나온선사 사리함

 

 

은제도금 라마탑형사리구는 하나의 국보급 문화재가 아니라 불교의 성물(聖物)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감히 따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옹선사는 고려 말 고승(高僧)이자 왕사(王師)로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도운 무학대사가 제자 32인중 하나다.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指空禪師)는 나옹선사에게 중국 베이징에서 불법을 전수한 스승이기도 하다.

 

1376년 나옹선사가 입멸한 후 평소 주석하던 회암사에 부도탑(浮圖塔)이 만들어지고 이후 부처님 진신사리와 나옹선사 지공선사 등의 사리가 함께 사리구에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구는 도굴후 고물상에 팔려나갔다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미술관.jpg

보스턴 미술관

 

 

이듬해 1월 혜문스님은 당시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을 대동하고 보스턴 미술관을 방문해 라마탑형 사리구의 반환문제를 협의했다. 보스턴 미술관은 관장과 부관장, 동양미술관 부장이 나와 라마탑형 사리구는 1939년 일본의 ‘야마나까 컴퍼니’로부터 정당하게 매입했고, 도굴품이란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2009년 1월 문화재제자리찾기 관계자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등 보스턴 미술관 사리구와 사리 친견.jpg

2009년 1월 보스턴미술관에서 사리구를 살펴보는 혜문스님과 정병국의원

 

 

보스턴 미술관은 그러나 “종교적 신성물인 부처님과 고승들의 사리는 원산국으로 반환할 수 있다”는 답변을 주었다. 단 한국 문화부 장관이나 문화재청장이 사리만의 반환을 승인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 보스턴 미술관이 ‘사리만의 반환’을 한다는 것도 크나큰 성과였다. 라마탑형 사리구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3여래 2조사’의 사리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보(聖寶)중의 성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발생했다. 한국의 문화재청이 사리구 없이 사리는 받지 않겠다는 이해못할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혜문스님 등 불교계는 사리를 먼저 돌려받고 사리구는 추후 협상을 벌여야 한다며 설득에 나섰으나 문화재청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이후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해 9월 보스턴 미술관의 제인 포탈 동양미술부장이 한국까지 와서 당시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면담했으나 한국정부는 “선례가 될 수 있기때문에 사리만의 반환은 절대 안된다”고 완강히 버텨 결국 환수협상을 수포로 돌아갔다.

 

 

2009년 1월 문화재제자리찾기 관계자와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등이 보스턴 미술관을 방문해 사리구와 사리를 친견한 모습.jpg

보스턴 미술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에 앞서 예불을 드리는 혜문스님과 정병국의원 등 일행 <이상 사진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세계 유일의 성물 환수를 한국 정부가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한 사리는 한국 불교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물중의 성물인데 완전한 반환만을 고집하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하고 말았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스턴방문에 동행한 김정광 뉴욕한국불교문화원장은 “사리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을 주지 않으면 사리도 안받겠다는 논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인질협상을 하는데 옷을 안준다고 인질도 받지 않겠다는 말인가?”하고 반문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사리구없이 사리만 돌려주는 것이 ‘부분 반환’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논리를 폈지만 반대로 긍정적 의미의 선례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허흥식 한국학 중앙연구소 명예교수는 “사리구를 포함한 일괄 반환이 바람직하지만 훼손된 용기를 새로 조성할 필요성이 있고 사리 반환이 사리구의 환수를 지연시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사리만의 반환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더러 향후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자연스럽게 사리구 반환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Arts of Korea.jpg

보스턴 미술관 한국관

 

 

혜문 스님과 불교계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보스턴미술관과 어렵게 대화창구를 다시 개설했고 2012년 초 보스턴에서 세 번째 면담을 갖게 됐다. 혜문 스님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부처님 유해(遺骸)의 일부로 당신들이 보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불교계의 성물은 조건없이 돌려줘야 한다”고 대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보스턴 미술관은 한국 정부가 부분 반환에 동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문서로 한국 정부의 약속을 받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사리구 반환 요구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의 비논리적인 고집과 종교적 성물을 간과(看過)한 보스턴미술관의 비협조 사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와 나옹, 지공선사의 사리가 ‘인질 아닌 인질’이 되버린 셈이었다.

 

불교계에서는 기독교 색채가 강했던 이명박정부가 사리구를 핑계로 불교의 성물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고의적으로 외면한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혜문스님은 “납득할 수 없는 원칙을 고수하며 보스턴 미술관의 사리 반환 제의를 정부가 거절한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 만일 예수님의 유골(遺骨)이었다면 MB정부가 그렇게까지 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3여래 2조사’의 성물 반환 문제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렇다 할 관심이 없었기때문이다. 미주한인불교계에서만 몸이 달았다. 보스턴 미술관을 상대로 진신사리 반환 청구 소송을 들어갈 것을 검토하고 맨해튼의 로펌 등과 접촉을 했으나 본국에서의 동력이 떨어져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1.jpg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들

 

 

그러나 문재인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과거 잘못된 관행과 적폐와의 청산을 기조(基調)로 하는 만큼 이전 정권의 실책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특히나 라마탑형 사리구와 사리 문제는 문화재의 환수를 넘어 2500년 불교의 성물이자 빼앗긴 우리나라의 보물을 환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는 민족적 자존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계와 문화계, 정부가 힘을 합쳐 치밀한 전략을 갖고 보스턴 미술관과 조속한 환수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부처님 진신사리와 나옹 지공선사의 사리 등 ‘3여래 2조사’의 즉각적인 반환을 공식 요청하고 라마탑형 사리구에 대해서도 대승적인 차원의 기부를 설득하되, 그것이 힘들다면 사들이는 방안을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협상을 해야 한다.

 

올해는 ‘3여래2조’의 사리가 봉안된 라마탑형 사리구의 환수가 시작된지 만 10년이 되는 해이고 2019년은 이 사리구가 불법 도굴돼 미국으로 흘러들어간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불기(佛紀) 2563년(2019년) 기해년(己亥年)엔 부처님의 성물과 사리구가 온전히 우리 품에 들어오는 환지본처(還至本處)의 해가 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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