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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칸 영화제가 5월 11일부터 5월 22일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1966년 황금종려상 수상작 ‘남과 여’가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5월 14일 토요일, 50주년 기념 상연이 종료되자 관객들이 일제히 좌석에서 일어나 열렬하게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프랑스 미디어들이 전했다.

클로드 를르슈 영화감독은 반세기가 흐른 뒤에도 이렇듯 ‘남과 여’가 사랑받을 것이라고는 촬영당시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며 감개무량해 했다.

102분 이어지는 한 남녀의 만남, 헤어짐, 재회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줄거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네아스트와 연기자들의 재능, ‘다바다바다(da ba da ba da)’ 콧노래선율로 유명한 영화주제곡, 겨울철 노르망디 도빌 해변을 담은 영상미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명작으로 이끌어냈다.

 

 

▶ 실패와 절망에서 우연히 피어난 성공작

 

클로드 를르슈 영화감독은 평소에도 겨울철 도빌 해변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늘 피력했던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인생을 180도 확 바꿔놓았다는 8번째 장편영화 ‘남과 여’는 겨울철 도빌 해변에서 우연히 잉태됐다.

1965년 어느 겨울, 젊은 시네아스트는 낙담과 절망에 짓눌린 채 미친 사람처럼 자동차를 몰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도빌 해변이었다고 한다. 7번째 작품이 배급사를 찾지 못해 영화관에서 상영도 못하고 필름을 파기해야하는 처참한 상황에 빠졌던 것이다. 당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노장감독은 회고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자동차에서 밤을 새고 이른 아침 눈부신 햇살에 눈을 떴는데, 햇살이 번지고 있는 모래사장은 마침 썰물이라 광활하게 펼쳐졌으며, 멀리 한 우아한 부인이 어린이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도 매혹적인 광경에 도취된 그는 여인을 향해 걸어갔는데, 바로 그 순간 차기 작품의 테마가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쳤다는 것이다.

도빌 학교기숙사에 머무는 어린 딸을 만나러 온 여인이 역시나 딸과 같은 학교 기숙사생인 8살 아들을 만나러 도빌을 찾은 남자를 해변에서 만난다는 착상이다. 머릿속에 스친 순간적인 창작 영감을 즉시 종이에 옮겨놓고자, 시네아스트는 도빌역 앞 카페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이후 48시간 만에 완성했다.

 

▶ 제작비 부족으로 흑백필름 촬영

 

젊은 시네아스트는 겨울철 도빌 해변에서 즉시 영화촬영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제작자를 쉽사리 찾을 만큼 유명한 감독도 아니었고, 영화관에 상영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무일푼 시네아스트는 칼라필름이면 케나다 TV영화용으로 무조건 사들였던 한 비즈니스맨과 ‘남과 여’가 칼라영화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외부풍경은 칼라로, 실내장면은 흑백으로 처리되어 촬영된다. 칼라용 필름구입비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를 연상하는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흑백영상으로 처리된 영화작품도 흔한 편이다. ‘남과 여’는 시점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실내장면들이 흑백영상으로 처리되면서 오히려 작품에 독특성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외부촬영이지만 예외적으로 카레이서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자동차경주 장면도 흑백영상이다.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데다 칼라보다 촬영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라고 노장감독이 설명했다.

자동차경기는 모나코 F1그랑프리 장면이며, 촬영 세트장을 설치하지 못해 직접 레이서차고를 빌려 실전처럼 경기에 참여했다고 한다. 단 남자주인공이 모는 포드 머스탱 자동차에는 예외적으로 3명이 탑승한다. 뒷좌석에서 감독이 16mm 흑백필름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자동차 경기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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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간의 “아마추어들의 합작품”

 

28세의 시네아스트가 차기작품의 제목과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가장 먼저 촬영계획을 털어놓았던 측근은 피에르 바루(Barouh)이다. 배우이자 가수 겸 작곡가 피에르 바루는 극중에서 여주인공이 사별한 남편 역을 맡으며 주제가도 부르는데, 바로 그를 통해 프랑시스 레(Francis Lai)를 소개받는다. 프랑시스 레가 작곡한 유명한 ‘다바다바다’ 선율은 ‘남과 여’를 성공작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클로드 를르슈는 영화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항상 인지해왔노라고 밝혔다. 사실 ‘남과 여’의 주제곡은 영화촬영 이전에 미리 작곡되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촬영장에서 ‘다바다바다’ 선율을 틀어놓았다고 노장 시네아스트가 설명했다.

남녀배우 선정에 임하여 젊은 감독의 머릿속에 쟝-루이 트랭티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여자 주인공으로 로미 슈나이더를 생각했지만, 배우의 프로급 명연기보다는 자연스런 여자모습을 선호했던지라 당시 덜 알려진 아누크 에메를 선택했다고 했다.

‘남과 여’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듯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런 연기와 장면에 중점을 두었노라고 클로드 를르슈는 피력했는데, 사실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그의 영화촬영기법이다. 아누크 에메도 당시를 회고하며, 감독이 줄거리를 열정적으로 말해주었지만 정해진 각본은 없었다고 전했다. 연기자들의 순발력과 감흥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남자’역의 직업도 원래는 카레이서가 아닌 의사였다. 쟝-루이 트랭티냥이 주인공역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카레이서로 바꿔줄 것을 제안했고, 감독은 잠시 생각해보고 이를 승낙했다. 평소에 트랭티냥은 자동차 경기에 깊은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의 숙부 모리스 트랭티냥은 당대 프랑스 최고의 카레이서였다.

 쟝-루이 트랭티냥은 영화 속에서나마 카레이서의 꿈을 실현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평면성에서 벗어나 액션이 가미되면서 영화의 깊이가 더해지는 결과를 얻어냈다.

대표적인 프랑스 고전영화의 반열에 오르는 ‘남과 여’는 이렇듯 순식간에 시나리오가 구상되고 저렴한 제작비로 고작 13일이라는 촬영기간을 거쳤다. 젊은 신참내기 아티스트들이 13일 동안 의기투합하여 탄생시킨 작품이나 다름없다. 쟝-루이 트랭티냥은 “아마추어들의 합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

 

▶ 인생을 바꿔놓은 대박

 

1966년 5월 13일 ‘남과 여’는 힘겹게 칸 영화제에 출품되고, 제7의 예술로서 당당하게 기염을 내뿜으면서 관중으로부터 20분간 기립박수세례를 받았다. ‘남과 여’ 관계자들이 묵던 호텔 등급도 부상되어 즉시 칼튼 특급으로 배치되었노라고 아누크 에메가 농담 삼아 덧붙였다.

클로드 를르슈는 ‘남과 여’가 절망의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켰다고 수차례 표명했다. 당시 무명 아코디언 연주가였던 프랑시스 레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이때부터 국제적으로 음악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누크 에메와 쟝-루이 트랭티냥도 전설적인 커플로 이미지가 굳혀지고 있다.

오늘날 클로드 를르슈는 팔순에 접어들었음에도 활동은 여전히 왕성한 편이다. 2016년 칸 영화제 필름마켓부스에서 2015년 최신작을 홍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한다. 유명감독이라는 스타기질 없이, 평범한 이웃아저씨와도 같은 너그러움과 소박함, 겸손한 태도로 늘 관객들과 대화를 즐기는 시네아스트로 인식되어 있다.

 

한편 2016년 칸 영화제에 상영된 ‘남과 여’는 50년 전 아날로그 카메라필름의 원본이 아니라, 영상과 음향에서 완성도가 완벽성에 이르는 디지털필름이다. 신세대들이 선명하고 질 좋은 이미지와 사운드로 ‘남과 여’를 감상할 수 있도록 최첨단 디지털로 세팅했으며, 조만간 일반극장가에도 상영될 에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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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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