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 오면서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으려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왔다. 저녁에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데 상당히 놀랐다. 운전이 왜 이러지? 시내의 도로는 우둘투둘하다.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잘 다닌다. 20~30년 전 어느 나라에 가니 운전을 하려면 적어도 대학을 4개는 나와야 한다는 말에 많이 놀랐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차량이 함께하는 길에 우선 ‘빵빵대’를 나와야 하고 그 다음엔 ‘들이대’를 나와야 밀리지 않는단다. 이번엔 ‘돌려대’를 나온 사람이라야 경제적 운전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지맘대’를 나와야 고수라 했다. 나는 운전 경력이 40년쯤 되지만 여기서는 어림도 없겠다. 길을 보수하고 차선을 긋고 신호등이나 안전장치를 더 해야겠다. 사람들은 예사로 아무 데서나 길을 건넌다. 고속도로가 없는 나라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공간이 부족한데도 좌회전이나 유턴을 허락하고 있어서 위험스러웠다.

 

차량은 거의가 쉐보레(GM대우)다. 라세티와 경차 마티즈가 눈에 익었고 오래전에 보았던 다마스는 합승택시로도 쓰이고 있다. 택시는 카카오택시 앱 같은 것으로 부르면 내비를 보며 부리나케 달려오는데 요금은 현금거래다. 버스나 트럭은 중국의 Yutong이 싹쓸이했다. 영어보다 러시아어가 잘 통한다. Havas라는 유통편의점이 자주 보인다. 유산균 음료를 사러 들어갔는데 바코드를 읽는 레이저가 버벅거린다. 그런데 현금거래다. 카드는 안 된다. 백화점이나 큰 식당 등에서는 카드가 되지만 현금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주민들은 길을 따라 양 옆으로 담처럼 집을 지어 울타리로 삼았다. 철대문을 달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마당이나 정원이 있다. 옆집과도 높은 담을 쳐서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길에서는 집안이 보이지 않으니 철저한 가림이다. 그런데도 서로 나누어 먹고 잘 지내는 모양이다. 한국처럼 둘레길이나 자전거 타기 길은 없다. 도심에 공원과 놀이터가 있지만 여가를 즐길 문화공간이 귀한 것 같다. 적어도 수도 타슈켄트에서 65km 떨어진 천산(Tien Shan) 산맥의 차칼(Chatkal) 지역으로 가야 차르팍(Charvak) 댐과 치노켄트(Chinorkent) 케이블카가 있는 휴양지가 나온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2시간을 가야 한다. 거기서 또 100Km, 두어 시간을 더 가야 해발 1227m의 우감-차트칼(Ugam-Chatkal) 국립 공원에 우룬가흐 옥호(玉湖; Jade Lake Urungach)가 있다. 시름을 잊고 싶으면 한동안 살다 가기 좋은 곳이다.

 

개발붐을 타고 외국의 자본을 들여와 높은 상가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서민들은 강 건너 불처럼 보일 것이다. 40년이 지난 영화, 꼬방동네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1978년에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여기서도 보인다. 날마다 지기만 한 그 전쟁에서도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를) 그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는 지옥에서의 몸부림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안 해도 가난의 문은 미궁이다.

 

이들이 자랑하는 큰 시장에 가 보았다. 초르수 시장은 장충체육관을 연상하면 된다. 중앙에 기둥이 없는 높은 돔 지붕 아래 구역마다 제각기 다른 물건을 판다. 호객행위는 별로 없다, 짐치라는 것이 김치다. 고춧가루는 별로 묻지 않았지만, 배추를 절인 것으로 알겠다. 견과류가 많다. 치즈와 버터, 쿠르트(qurt)라는 유제품이 많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 양고기와 쇠고기, 닭고기와 말고기를 판다. 당연히 돼지고기는 없다. 논(non)이라는 쟁반같은 빵을 많이 먹는다. 솜사(somsa)는 만두피 안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화덕에 구운 것으로 먹을만하다.

 

히잡은 여인들의 얼굴을 조그마하게 보여주니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겠다. 다양한 색상으로 아름다운 히잡은 한복처럼,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면화와 실크가 많이 나니 값싸고 좋은 재료가 섬유산업을 발전시킨다. 아비가 가족을 벌어먹여 살려야 한다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욕구는 강하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 저축하기는 황새 따라가는 뱁새다.

 

돔 지붕에 있는 커다란 플래카드에 뭐라고 쓰여있냐고 물어보니 독립 32주년을 기념한다는 뜻이란다. 독립국가연합(CIS)으로부터 1991년 8월 31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9월 1일에 독립했으니 오래 달아두고 싶을 것이다. 이때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다. 거의 90 프로로 당선된 대통령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내륙 중의 내륙국인 이 나라에 물이 부족하고 교통과 통신이 열악하고 공장이 거의 없다. 오늘 아침을 포함하여 그간 몇 번의 예고 없는 정전이 있었다. 농업국이라 하지만 기업농이나 과학영농으로 가야 하는데 재래식 농업이 대부분인 것 같다. 정부가 할 일이 태산 같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물가가 치솟았단다. 그러니 이들에게 코리안 드림은 돌파구다. 그래선지 한국어 열풍이 거세다. 대장금의 장금이를 장견이라고 다 안다.

 

비행기 표가 없으면 공항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하철에도 경찰이 검표한다. 백화점에는 직원의 검사를 받고 들어갈 수 있다. 이러니 야당이 설 자리가 없겠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독식하는 구조다. 노동의 대가보다는 자본과 지대(地代)가 더 지대(至大)한 모양이다.

 

주민들은 30~50년쯤 전의 한국처럼 인정이 있는 것 같다. 친인척이 자주 왕래한다. 만나면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한다. 덕담을 나누고 자주 기도를 한다. 어른을 공경하고 아꺄(형님), 우꺄(아우)가 분명하다. 남녀도 유별이다. 아들이 여럿인 집은 차남이 결혼을 해야 장남이 분가를 하는 방식이니 주로 막내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산다. 합리적이다. 형제자매간의 우애가 돈독하다. 밥상머리 교육이 잘 되는 것 같다. 아기를 낳으면 곧 이웃을 초청하여 대접한다. 좀 사는 집은 양을 한 마리 잡는다니 우리로서는 송아지 한 마리 잡는 잔치다.

 

주민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니 하루 5번의 기도가 생활이다. 기도하기 적절한 여건이 아니면 수건이라도 깔고 무릎을 꿇는다. 대단한 일이다. 해 뜨고 질 때와 점심때, 자기 전에 그리고 오후 해딴에 하는데 사원에서는 매일매일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기도는 값지고 필요한 일이다.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약속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 아니겠는가? 네탓이오만을 외치는 사람들, 유감이라는 말로 사과한다는 사람들, 내로남불들이 어찌 기도를 알겠는가. 기도(祈禱)는 기복(祈福)이 아니고 우리 인생과 나라의 기복(起伏)을 염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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