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북풍몰이’가 통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하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총선에서 북한의 핵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전면적인 대북봉쇄, 북한의 테러 가능성 제기, 그리고 집단 탈북을 이례적으로 공개하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북풍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현 정부의 경제실정을 응징하였다. 워싱톤포스트(WP)지는 이번 총선에서 북한은 핵심 이슈로 고려되지 않았다며 유권자들은 경기 침체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았다고 지적했다.
  ‘북풍몰이’가 통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 실정이 그만큼 중요한 이슈라는 점도 있지만 대북봉쇄전략이 눈에 보일만큼 총선용이라는 점을 유권자들이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는 당연히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초 유엔이 생각한 대북 재제의 내용에는 개성공단의 폐쇄, 나진항 개발사업의 금지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안보리 제재는 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연관성이 있는 금융거래를 주목하였지 개성공단이나 나진항 개발 같은 경제협력과는 무관하였다. 특히 우리 정부가 러시아가 적극 추진하였던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에서 손을 빼고 러시아산 석탄 수출까지 금지한 것은 노골적인 반러 정책으로 향후 한국의 대러 외교에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 나진을 잇는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에서 화물선으로 포항·부산 등 국내 항으로 들여오는 복합물류사업이다. 여기에는 남·북·러시아 3국이 참여하였으며 한국에서는 포스코·현대상선·코레일 3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출자했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는 나진항 개발을 위해 약 3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러시아의 하산과 나진을 연결하는 54km 철도를 구축하고 2단계로 나진항 개발을 추진하였다.
  러시아는 자국이 투자한 나진항 개발사업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안 승인 때 나진항을 통한 제3국산 석탄 수출을 예외로 할 것을 적극 요구하였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전면적인 대북봉쇄를 위해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를 중단하고 나아가 북한의 항구를 이용한 어떠한 수출도 거부함으로써 러시아산 석탄의 한국 반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대북제재의 국제 결속력을 강화하고 미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서 충분히 가능한 러시아와 척을 지는 외교적 악수(惡手)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나진항을 통해 러시아산 석탄을 수출하여 받는 금액은 거의 의미가 없는 반면 러시아는 지난 10년 동안의 투자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난 지금, 전면적인 대북봉쇄정책의 자충수로부터 출구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미국이 은밀히 악화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 없이는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북한의 핵 기술 발전이 자칫하면 미국 본토에서 핵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탄도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고 소형화된 핵탄두 기폭장치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면, 미국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스푸트니크뉴스(sputniknews)는 미국은 1월초부터 비밀리에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오바마 정부 이후 새로운 정부가 어떤 이유든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한다면 한국외교는 치명적인 고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정세변화로 포기해야 될 그런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유라시아 대륙에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옛 소련 국가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유라시아 경제연합(EEU),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구상’을 통한 천문학적 금액의 인프라 개발과 역내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저성장과 새로운 시장 부족에 허덕이는 한국경제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유라시아 시장 교두보는 결국 북한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끌어 들이냐에 달려 있다. 북한을 전면 봉쇄하고 전쟁 분위기를 고취시켜서는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및 유럽 국가들과 제대로 협력할 수 없다. 당장 러시아가 한국과 EEU 간의 FTA에 딴죽을 걸 가능성이 많다. 중국은 경쟁자인 한국이 북한에 묶여서 고립되는 것을 내심 바랄 것이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중단된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 등 유라시아 협력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장기적으로 대북봉쇄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방위적인 봉쇄가 북한 붕괴를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객관적인 논리나 증거가 없다. 김정은의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중국의 지원이 줄어들고 외부적인 봉쇄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행 추정치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은 5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FAO·WFP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생산은 2010년의 450만t에서 2014년에는 503만t으로 53만t(11.8%)이나 증가했다. KOTRA 추계에 따르면, 북중무역은 장성택 사건에도 불구하고 2014년 68.6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북중무역은 전년 대비 증가한 것으로 중국 세관이 발표하였다.
  중국의 초강대국으로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는 새로운 세력균형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 군사, 경제 등 협력과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 카드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북한의 핵 실험은 대외적으로 제재를 불러왔지만 이런 식의 봉쇄전략만으로는 북한 문제를 풀 수 없다.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진 것은 미국의 봉쇄정책이 성공해서가 아니다. 생산성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동유럽과 소련은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쿠바는 미국에 의해 50년 동안 봉쇄되었지만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이번 전면적인 봉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배후에 있는 한 그 성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남북관계 갈등에 따른 코리아 리스크가 올라가면서 한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북한 핵 문제를 푸는 길은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경제적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 나진항 개발의 참여는 물론 개성공단 재가동도 이런 시각에서 재검토되어야 하며 전면적 대북봉쇄전략의 출구전략이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윤성학 본지 객원논설위원)
* Russia Focus 368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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