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조국순례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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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녁 8시 경주역에서 일행과 작별하고 나를 굳이 집으로 초대한 트친 정광희 씨의 마중을 받았다. 초면인 48세의 정 씨는 2년간 가족과 남미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며 살다 귀국한 이색적인 사람이다. 그는 이날 나의 도착과 같은 시간 외국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귀환하는 길에 나를 대동해 같이 간 것이다. 집에는 그의 형제자매 식구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정을 모르고 들어선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의 따뜻한 환대에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한국에서 산업디자인 계통에 종사한 정 씨가 에니메이션 분야에 일하던 부인과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무작정 한국을 떠나 남미 여러 나라를 거치며 생활한 이유는 순전히 자녀교육 때문이다. 서울서 학교다니다 경주로 옮긴 중학생 아들이 왕따 당해 학교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녀교육을 위해 무작정 남미로 떠난 것이다. 정 씨는 한국의 공교육에 극심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는 페루와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차례로 여행하면서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구경시키는 한편 현지학교에서 한 두 학기 씩 공부하게 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이런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잘한 결정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땅을 빌려 한국채소를 재배해 현지 한국식품점에 납품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다행히 자녀들은 넓은 세상에 눈을 뜨고 스페인 말을 완전히 익혔다. 16세 아들은 이제 인생에 자신이 생겼다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정 씨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고 모든 것을 의지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했다. 아들은 앞으로 영어를 습득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죽자 살자 입시와 성적만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씨 부부의 파격적인 실험결과가 궁금해진다.

 

밤늦게까지 정 씨와 대화를 나눈 나는 이튿날 아침 그의 안내로 40여 년 만에 석굴암을 찾았다. 과거 소박했던 석굴암은 신축된 사찰건물과 수많은 관광객들로 복잡했다. 석굴암은 보존을 위해 해체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결로현상 등으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한다. 현대기술이 천 년 전 조상의 슬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원래 나는 이날 거제로 출발해 인근 섬들을 다닐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광희 씨와 작별하고 경주역에서 뉴스를 보니 남해안 풍랑으로 추석 귀성객들이 발이 묶였다고 한다. 또 전국이 귀성객들로 도로체증이 심하다는 보도다. 한산도 수루에서 달맞이 하려던 나의 낭만적인 꿈도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달구경도 못하고 그보다 추석 사흘 앞둔 교통체증으로 이동하는 것도 문제다.

 

어디로 향할지 궁리도 할 겸 지난해 지진피해를 입었다는 국보 31호 첨성대를 둘러보기로 하고 인왕동 고분군으로 발길을 돌렸다. 도보로 2~30분 거리지만 절뚝거리는 다리로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도착했다. 가을철 추석연휴를 맞아 첨성대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코스모스와 온갖 화초와 안개꽃 풀숲에서 연인들끼리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나는 지난 해 지진으로 기울어졌다는 첨성대를 관찰했다. 상층부 정자석이 밀려나 있고 전체적으로도 기울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날도 습관처럼 안내원과 관람객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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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은 지난해 9월 12일 진도 5.8 지진을 겪은 경험을 말하며 첨성대가 무너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조만간 수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비슷한 규모 지진이 재발한다면 상층부 정자석이 떨어져 내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관람객이 또 지진이 나면 첨성대 문제가 아니라 월성지역 원자력 발전소가 큰일이라며 참견했다. 그 바람에 화제가 첨성대에서 원전으로 옮겨 갔다. 안내원은 그 정도 되면 경주시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관람객은 왜 하필 활성단층 지진대 위에 원전을 건설했는지 모르겠다며 지난해 지진 이후 6백 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여진이 있어 경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불안해했다. 우리 대화에 노인 몇 명이 더 끼어들었다. 한 노인은 죽고 사는 것이 모두 팔자고 원전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어쩔 것이냐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우리야 살만큼 살았지만 젊은이들은 무슨 죄냐고 대들었다.

 

나는 그쯤에서 빠져 나왔다. 내가 기행문을 쓰는 지금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사재개를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원전을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우도록 촉구한다. 어차피 앞으로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마지막 원전만큼은 정부가 직접 공사전반을 철저히 감독해 설계도면대로 제대로 건설하는지 자재는 제대로 쓰는지 건설업자들이 양심적으로 공사를 하는 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 단 한 번의 원전사고는 현재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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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첨성대를 떠나 한창 발굴작업 중인 고분군을 둘러보고 경주역 부근에서 경주 별미라는 육부촌 육개장으로 식사한 후 역으로 갔다. 뱃길은 끊기고 추석연휴 둘째 날이라 어디든 교통편이 어려웠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서울행 무궁화 열차표를 끊었다. 그나마 동대구에서 갈아타고 대전까지는 입석으로 서울까지 7시간 걸렸다. 울릉도에서 혹사당해 절뚝거리는 다리도 휴식이 필요했다. 파주 동생 집에서 며칠 재충전하고 처갓집 추석 모임에 참석한 후 요양원에 계신 92세 장모님을 찾아 뵌 후 목포로 내려가 흑산도 배를 타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밤늦게 파주에 도착한 나는 옷을 모두 세탁기에 넣고 자리에 쓰러졌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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