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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랑스를 누비는 가장 멋진 남자는 품격 있는 정장차림의 007 제임스 본드가 아닌가 싶다. 007시리즈물 ‘스펙터(Spectre)’ 영화홍보 스크린이 파리의 명소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대문짝만하게 내걸렸을 뿐만 아니라, 본드걸(프랑스인 레아 세두)과 포즈를 취한 제임스 본드(영국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파리 전철역은 물론이고 프랑스 거리곳곳을 종횡무진누비고 있다.  

제임스 본드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가상의 세계에서 살인면허를 지닌 007스파이라기 보다는, 21세기의 피 튀기는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명품브랜드들의 ‘마케팅 대사’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슈퍼맨 등 영화나 소설이 만들어낸 유명한 가공인물들은 많으나, 이들 중에서 최고의 고소득이 보장되는 히로인은 단연 제임스 본드다. 영화산업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거둬들인 히로인으로 간주된다. 1962년부터 오늘날까지 제작사에 안겨준 수입은 총 63억 달러에 이른다는 집계이다.  

세월이 흘러도 007스파이는 늙지도 않고 늘 미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남성미를 자랑하며, 현란한 카지노게임에서는 결코 지는 적도 없다. 게다가 럭셔리 브랜드제품을 좋아하는 마니아다. 고급명품 브랜드는 제임스 본드의 제2의 피부나 다름없다.

007스파이가 본드걸과 즐겨 마시는 샴페인은 프랑스산 볼렝제(Bollinger), 보드카는 폴란드산 명품브랜드 벨베디어(Belveder)이다. 손목에는 오메가를 차며, 자동차는 애스톤 마틴(Aston Martin), 랜드로버 혹은 재규어(Jaguar) 등 으리으리한 고급세단만 몰고 다닌다. 1964년 ‘골드핑거’에서 007스파이가 잠시 롤스로이스로 갈아타는 외도를 범했지만, 50년 전부터 마음을 바꾸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자동차는 단연 애스톤 마틴이다. 

애스톤 마틴은 ‘007 스펙터’ 촬영을 위해 DB10 자동차모델을 특별히 제작했다.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주고자 10대만 제작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애스톤 마틴의 세일즈맨은 바로 제임스 본드라는 사실에 영국 자동차회사는 자부심마저 지닌다고 한다. 

이렇듯 1978년 이후 007시리즈물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4대 명품브랜드는 애스톤 마틴 자동차, 오메가 손목시계, 볼렝제 샴페인, 첨단전자 소니를 꼽는다. 이들 브랜드들은 영화제작사에 거액의 광고료를 지불하며, 그 대가로 영화장면에서 자사 제품들이 격조 있고 우아하게 등장하도록 까다롭게 요구한다. 제임스 본드의 아우라를 등에 업은 철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이다.   

맥주브랜드 하이네켄도 007영화 제작스폰서이다. 올해 ‘007 스펙터’ 히로인의 모습을 담은 맥주캔 5억 개를 출고했다. 2012년에도 제임스 본드 초상권을 이용한 마케팅으로 8천만 유로를 투자했다. 소니도 확실한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에 유명 브랜드들이 007스파이에게 쏟아 부은 금액은 무려 2억 달러에 이른다. 

와인으로는 생테밀리옹의 샤토 안젤루스(Angélus)가 007스파이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샤토 안젤루스는 제임스 본드의 스폰서가 될 재정능력이 없으며, 이 브랜드가 영화에 등장한다면 순전히 영화제작자 브로콜리 가족과의 친분관계 덕분이라고 와인제조업자 측에서 밝혔다. 샤토 안젤루스 소유주는 해마다 브로콜리 가족에게 와인 상자를 선물로 보내며, 자사 브랜드가 영화장면에 등장하는 지의 여부는 관람객들처럼 영화개봉 시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만일 영화에 자사 브랜드가 등장하면, 영화홍보용 포스터와 더불어 ‘제임스 본드가 즐겨 마시는 와인’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전략을 펼친다. 이 경우 007스파이의 초상권을 이용한 광고비로 6만 유로를 지불한다고 샤토 안젤루스 측에서 설명했다.

오메가와 볼렝제 소유주도 영화제작자 브로콜리 가족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볼렝제는 11월 11일 프랑스에서 ‘007 스펙터’ 영화개봉과 더불어 ‘제임스 본드가 즐기는 샴페인’이라는 이미지로 마케팅전략에 박차를 가했다. 다른 샴페인 브랜드사들도 서로 앞 다투어 007스파이를 유혹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라고 한다.

한편 남성면도기 분야에서 세계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질레트 브랜드는 영화장면에 직접적으로 삽입되지 않지만, ‘007 스펙터’라는 광고문을 사용하면서 영화제작사에 판매량의 10%를 로열티로 지불한다. 이처럼 가공인물 007스파이는 실제의 21세기 인간사회에서 황금알을 낳는 마케팅 대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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