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대통령 ‘평화의 수호자’

러시아기자가 본 문재인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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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창동계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일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한반도 기(旗)를 앞세우고 올림픽 개막식에 공동 입장하고,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어 경기를 하게 된다. 물론 한국 내에 “독재자 김정은 정권”과 화해하는 것을 반대하는 다수의 세력이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의 수호자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북한 정권과의 화해가 그의 개인사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전쟁 발발 이전까지 그의 가족은 38선 이북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살펴보면 이것만이 흥미로운 사실은 아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불법시위에 참가했었고 자신의 신념 때문에 투옥된 바 있으며, 시위 현장에서 아내를 만났다.

 

 

촛불 혁명의 결실

 

2016년 가을 대한민국 전체를 시위대의 물결이 휩쓸었고 결국 이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왔다. 그러나 혁명의 불길은 시위대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촛불들에서 그 역량을 집중하여 발휘했다. 시위는 엄청나게 큰 규모였지만, 경이로울만큼 평화로웠다. 권력층의 부패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들이 나섰다. 심지어는 이 정부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던 정부 관리들까지도 나섰다. 이 역사적인 촛불 시위에 17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었고, 한 사람도 체포된 사람이 없었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된 문재인도 그 당시 시위대와 같이 서 있었다. 그는 야당 당원으로서, 그리고 유명한 인권 투사로서 이런 행사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후에 “촛불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운동의 결과로 그는 정권을 잡게 되었다. 2017년 5월 9일 그는 조기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다.

 

한국 내 보수주의자들의 입지는 상당히 강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그 지지기반을 크게 붕괴(崩壞)시켰다. 그래서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은 상당한 표차로(41.1%의 득표율)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가 비상조치 성격을 띤 조기 총선이었던 관계로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대선 결과 발표 다음 날 바로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문재인의 선거 전략은 한국인들이 이전 정권에 대해서 불만을 품던 모든 것에 대해 반대되는 방향을 잡는 것을 기초로 짜여졌다. 지금까지의 전임 대통령들 중에는 부패 스캔들로 오점(汚點)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박한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서민들의 요구를 일부러 모른 척 하고 무시하는 것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은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것을 약속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과의 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보다 더한 상황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북한은 새롭게 대통령이 된 문재인 정부의 평화적인 제스처에 대해 아무런 열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갑자기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이 대외 정책 분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한몽학과장 겸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 동방학과 교수는 북한 정권이 반년 동안 문재인을 연구했다고 본다. 그는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정부에 한국의 선의의 제의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그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는 중이며 그가 발표하는 성명이나 말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들을 통해 새로운 정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말하는 것이야 좋은 말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완전히 한 편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현재로서는 아직 한국 정책의 독자적인 면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대답이었다.

 

 

피난민의 아들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정립(定立)하는 것이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가 북한에서 월남(越南)한 가족사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부모는 1950년 12월 흥남부두에서 미군 군함을 타고 월남한 1만 4천명의 피난민 중에 있었다. 피난민인 그의 부모는 한반도의 가장 남쪽인 거제도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고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난 지 몇 개월 후에 문재인이 태어났다.

 

대선후보 TV토론에서 그에게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보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북한이 주적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면서 동의하지 않았다. 이 일은 보수 측에서 문재인이 북한 정권을 좋아한다고 비난하는 꼬투리를 만들었다. 그 보수주의자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문재인의 미국에 대한 자세도 역시 개인적인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자서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인 피난민들을 싣기 위해 군함에서 무기와 포탄을 버리라는 명령을 내린 미국 장교 레너드 라루 선장에 대한 깊은 감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월남한 피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려운 운명이었다. 장차 대통령이 될 문재인은 부모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가족과 함께 가난을 겪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동안 문재인은 천주교 성당에서 나누어 주는 옥수수 가루와 분유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줄을 서 있는 것이 기쁘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성당의 수녀와 신부님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다. 이것은 나중에 그가 천주교인이 되고 천주교 신자인 아내와 결혼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가정은 가난했지만, 문재인은 부산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남고에 합격하여 입학했다. 거기서 그는 일생 처음으로 불평등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학생들의 삶이 지금까지 그가 일상적으로 보아온 현실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려운 어린 시절은 그가 장래 직업을 선택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로 문재인은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기간에 시련의 날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운동에 휩쓸리면서 그는 여러 시위에 참가했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학생 리더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한국은 2016년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독재정권이 통치(統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민주화 운동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문재인은 체포되어 강제 징집 당하고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군복무도 그의 민주주의 수호 투사로서의 신념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제대 후 그는 다시 예전의 민주화 운동에 참가했고 또 체포되었다. 사법고시 합격 통보는 유치장 안에서 받았다.

 

문재인은 이미 시위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반대 시위에 나가면서 옛날의 향수를 느꼈을까? 그가 미래의 아내가 될 김정숙 여사를 좋아하게 계기가 된 것도 한 시위였다. 이 부부가 만나게 된 이야기는 정말로 낭만적이다. 젊은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이 최루탄 가스에 모든 기력을 상실하고 졸도(卒倒)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젖은 손수건을 가지고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김정숙 여사가 보였다. 흔히 하는 말로 눈에 콩깍지가 끼었든지, 아니면 사랑의 최루 가스를 들이마셨든지, 그 순간 그는 김정숙 여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치가는 하지 않겠다

 

문재인은 사법연수원 수료시 차석으로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나 시위 전력(前歷)으로 인해 판사 임용에서 탈락했다. 국내 최대 대형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거기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자서전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시절이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고 적었다. 바로 이때쯤 7년간의 연애 끝에 김정숙 여사와 결혼했고 당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났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는 회고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문재인을 자신의 선거 팀에 초청했지만, 문재인은 절대로 권력을 향한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거절했다. 그렇지만 노무현은 2003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결국 또 다시 자기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반복했다. 그 당시 이미 유명한 인권변호사가 된 문재인은 그 제안을 수락하고 민정수석이 되었다. 그는 국정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던 일을 바꾸어 정치를 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당시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을 정말 그리워했다고 부언(附言)하면서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고 나중에 시인했다.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그 동안 문재인은 여러 직책을 돌아가며 맡았는데 맨 마지막 직위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한 다음 그는 이전 직업으로 돌아가 지방에서 조용히 살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대로 될 운명이 아니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은 뇌물 수수 혐의에 부딪치자 자살했다. 마지막 유서에서 그는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같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라고 썼다. 문재인은 친구의 죽음을 알려야 했고 그의 장례식 위원장을 맡았다. 이 사건은 그를 깊이 뒤흔들어 그가 정치에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覺醒)시켰다. 그의 서거(逝去)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라고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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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근무할 때 문재인은 노무현의 그림자라고 불렸다. 이제 그는 그늘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2012년 그는 처음으로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보수 여당 후보인 박근혜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촛불 혁명”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지금 현 한국 대통령의 국정 결과를 평가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그의 북한 정책은 몇 가지 점에서 모순(矛盾)되는 문제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북한과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북한에게 대화를 제안하면서 한국 정부는 동시에 북한 국경에서 한미연합군사 훈련을 계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북한 김정은은 항상 반대하며 공격하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의 선언들을 무시하면서 계속적으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 남북한이 계속 화해 정책을 이어가고 고위급 회담에 합의할 가능성이 물론 있다고는 말한다. 그러나 가능성은 적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 국민들 중에도 모든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상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글 = 류보피 글라주노바 기자 | 러시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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