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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학 전통은, 문학이 역사, 철학(사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17세기 허균과 동시대 시인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에서, 그들이 즐겼던 시서화에 관심을 가져 뒤늦게 민화 작업을 시작한 유현숙씨가 시드니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사진은 이번에 선보이는 모란도. 77x135cm. 순지, 진채, 분채.

 

‘한국적 미술의 원형’... 두 번째 민화 개인전 여는 유현숙씨

 

‘한국 민족문화대백과’는 민화에 대해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라는 것으로, 일반 대중 속에 폭넓게 자리잡아 온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이 백과사전에 따르면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인 철학자이자 미술이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이다. 그는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정의했다. 야나기씨는 한국의 미술, 특히 민속공예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져 민중적 공예, 즉 ‘민예’라는 용어를 붙이기도 했다. ‘민예’의 개념을 그림에도 적용, 민화라고 칭한 것이다.

그의 정의에 이어 1970년대 민화는 조자용, 김철순, 김호연, 이우환 선생 등 연구가들에 의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 민화 연구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연구는 민화를 ‘민족의 미의식과 정감이 표현된 겨레의 그림인 민족화(김호연)’, ‘평민, 서민의 습관화된 대중적 그림(이우환)’으로 평했다. 이들의 연구는 민화를 보는 기본적 인식을 규정했다고 할 수 있다. 민화를 ‘민족적, 한국적 미술의 원형’으로, ‘겨레그림’임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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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도. 64x70cm

 

1세대 민화연구가들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온 한국의 민화는 이후 학자들에 의해 더욱 높게 평가받는다. ‘위대한 문화유산’을 쓴 한국학 최준식 교수(이화여대)는 민화에 대해 “민중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가장 한국적인 그림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호랑이 그림은 압권입니다. 이것 말고도 호랑이 민화는 많이 있는데 호랑이들이 하나같이 코믹하고 천진난만합니다. 이 세상에 호랑이를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그릴 수 있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분명 호랑이 같은데 고양이인 것 같기도 하고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남다른 유머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화들은 파격적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한 “민화가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격외적인 것은 외래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민중들이 그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 민화를 그린 민중 화가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린 그림은 귀족들의 그림보다 세련미나 격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은 나름대로의 정서를 잘 표현한 ‘좋은’ 그림입니다. 좋은 그림은 화가가 누군지 가리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나 생각을 잘 표현했는지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민화가 좋은 그림이라고 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민화는 이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품의 가치가 돈으로 평가받고 환산되는 자본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조선시대 서민층의 볼거리로 치부됐던 민화가 당당하게 ‘좋은 그림’과 ‘높은 가격’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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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도. 70x135cm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민화의 색감은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한국문학, 특히 17세기 허균과 동시대 시인들의 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학자에서, 그 시인들의 시서화에 매력을 느껴 민화 제작으로 영역을 넓힌 사람이 있다. 현재 칼링포드(Carlingford)에 거주하는 유현숙 선생이다. 뒤늦게 민화 창작을 시작, 10년여 년간 하루 10시간씩 훈련을 해 온 그가 두 번째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해 부산 ‘해오름갤러리’ 초대전을 가진 바 있는 작가가 시드니에서 마련한 두 번째 전시 또한 민화 이해를 통해 그의 본래 전공인 ‘문학이 시대적 사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작가는 “17세기에 활동한 시인들, 한시인들은 시서화에 정통해 3절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한시 작품 중에 제화시라 하여 그림을 보고 쓴 시들이 있다. 정지된 화폭을 보고 말로 다시 그림을 그려낸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제화시에 특별히 매력을 느껴서 깊이 들여다 본 적이 있다. 또한 우리의 문학 전통은, 문학이 역사, 철학(사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당연히 문화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한국의 고미술, 고건축에 관심이 많아 호주로 건너오기 전에는 단청을 배우기도 했고 특별히 문인화와 거기 담긴 정신의 문제가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매우 흥미 있게 파고든 적이 있다. 작가는 “특히 오주석 선생의 동양화 읽기는 감동적이었다”면서 “한국에 있었으면 더 공부를 했을 터인데 준비되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다”며 못다 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컸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사이, 일자리에서 퇴출당하는 날이 왔을 때 남편으로부터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 목록으로 작성하다 민화를 생각해 냈다.

“민화의 색감이 제게 와 닿았던 것이죠.”

그리고 작가는 오래 전, 고향 통영의 중학교 시절, 선배의 그림을 기억해 냈고 그에게 연락해 그림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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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도. 65x34cm

 

작가에게 민화를 사사한 ‘옻칠민화연구소’의 윤일수 선생은 “중학교 때의 내 그림 한 점을 상세히 기억하고 추억을 들추면서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는 간청이었다. 그렇게 그는 내 제자가 되었다”고 했다.

‘지천명’의 중반에 새로이 시작한 민화 훈련에 그는 하루 10시간씩 쏟아부었다. 매해 민화 화실이 모여 있는 서울 인사동으로 가 3개월 정도 배운 뒤 시드니로 돌아와 연습을 하고 이듬해 다시 서울의 화실을 찾아가는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민화는 선에서 시작해 선으로 끝나는 그림이다. 선으로 본을 뜨고 채색을 한 뒤 다시 윤곽선을 넣어 마무리하는 작업, 그래서 손이 떨릴 나이에 그는 붓대를 흔들리지 않도록 쥐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긴 세월의 치열한 연습은 그에게 ‘한국전통민화협회’ 특선(제5회), 한국민화협회 공모전 입선(제9회)의 기쁨을 주었고 민화협회원전에도 매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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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반도도. 70x70cm

 

10여 년, 하루 10시간의 치열한 훈련

 

“제 스승을 비롯해 많은 민화 작가들이 대개는 20, 30년 만에 개인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작가는 고령의 노모에게 작지만 위로를 전하고자 부산의 해오름갤러리 초대에 응했다. 작가는 이 첫 전시를 “구순이 넘은 노모께 바치는 노래자의 노래희였다”고 표현했다.

노래자(老萊子)는 중국 춘추시대 도가사상의 창시자로, 자연을 숭상했으며 평생을 늙은 부모를 모시고 숨어 산 은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고자 70이 넘은 나이에 어린아이가 입는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그것이 ‘노래희’(老萊戱)이다.

이어 작가는 “두 번째 개인전은 민화를 통해 받은 치유의 감정을 이곳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팍팍한 현실에서 아름다운 색감이 주는 위로의 힘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예술의 길은 멀고 험하다. 취미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예술가로 (책임감을 갖고) 작품에 매진할 수도 있다”는 그는 “민화의 발랄한 색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즐거움을 느끼는 취미로서의 민화 작업도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며 자신은 “후자의 입장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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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는 처음 개인전을 여는 국문학 박사이자 민화작가유현숙씨. 17세기 허균과 당대 시인들의 문학 및 시서화를 연구했던 그는 그 연장으로 민화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민화의 범주는 몇 분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그림의 소재 즉 화목(畫目)으로 볼 때 각 소재들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모란은 부귀영화를, 잉어는 출세를 뜻하는 식이다. 그래서 작가는 “민화는 소박한 꿈과 사랑의 은유”라고 표현했다. 그리하여 서양화의 구도나 원근법 등의 잣대로 감상하는 것은 적합지 않으며 평면적 구도 담긴 집단의 소망을 유추하며 그림을 읽어가는 것이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해외에서 민화작품을 창작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보다 대중화되어 많은 이들이 이를 체험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는 그는 “민화는 우리 그림이며 세계적일 수 있는 우리 문화”라며 “특별히 청소년들이 ‘우리 것’의 원형을 알아가고 체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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