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나는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었다.” “대통령이 됐다는 원죄로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되었다.” 믿기지 않지만, 5.18 광주학살의 수괴, 전두환이 최근에 발간한 회고록의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회고록에서 전두환은 광주항쟁 당시 발포명령에 대하여 자기와는 무관했던 일이라고 주장하며, 광주항쟁을 불순분자와 폭도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해 ‘광주사태’란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이는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발포명령이 있었다’며 본인 스스로 살인죄를 인정한 것조차 부인하는 것이며,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정식 규정이 된 ‘광주 민주화운동’을 홀로 뒤집어 엎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인 것이다. 전두환은 자신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서도 긍정적 시각을 내비친다. 비상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이처럼 ‘역사 농단’이라 할 수 있는 이 회고록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탄핵, 그리고 조기대선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와 5.18 진실규명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져가는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책이다. 기가 막히고 통탄할 노릇이다.

 

본문

1980년 5월의 광주에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추악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극상 쿠데타로부터 시작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했고, 이에 저항한 광주 민주시민들이 무차별적인 군사작전으로 진압되며 수많은 고귀한 생명이 삶을 마감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국민들을 향해 총칼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무려 606명(165명이 항쟁 당시 사망, 나머지는 부상 이후 사망), 청소년 사망자 41명, 구속-연행이 1394명이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방불명자도 65명으로 공식 집계되었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은 제 7공수여단으로서 전투에만 투입되는 잘 훈련된 특수부대였다. 그들은 총과 대검으로 민간인들을 찌르고 쏴 죽였으며, 심지어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수혈을 위해 줄을 서있던 시민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최근에 국과수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들은 고층 건물이었던 전일빌딩에 전투용 헬기를 투입해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학살이었다. 결국 이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으로 광주 민주항쟁은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 민주항쟁은 패배가 아닌 역사의 승리였음이, 그리고 당시 광주에서 죽어간 생명들도 무의미한 희생이 아닌 민주주의 부활의 영웅이었음이 증명되었다. 광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1980년대 반독재 민주의식과 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되었고, 87년 6월 항쟁으로 이룩한 13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치상황이 청문회를 통해 광주에서의 공수부대 과잉진압 및 학살과 신군부의 정권찬탈음모를 전국에 TV로 생중계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수렁에서 건져 올린 건 언제나 광장에 모인 민주시민이었다.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폭발한 1960년 4.19 혁명, 김영삼 국회의원 강제 제명이 도화선이 된 1979년 부마항쟁, 전두환과 신군부의 독재에 반발함으로써 생겨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 모두는 국민을 짓누르는 독재정권 타도투쟁인 동시에, 참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주시민의 정당한 주권적 행동이었다. 수십 년 동안 비민주적인 제도권 정치와 갈등을 벌이던 광장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드디어 ‘민주화’라는 꽃을 피웠다.

이 1987년 6월의 항쟁은 6.29 선언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민주노조를 정치적 주체로 격상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장시키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선거의 공정성이 위협(국정원 대선개입)받았고, 정치적 기본권이 제한(민간인 사찰, 언론 장악, 블랙리스트)됐으며, 시민적 자유도 위축(공안몰이, 카카오톡 감청)되었다. 권력분립(청와대의 여당과 사법부 장악)이 실종됐고, 급기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정치적 대표성(정윤회, 최순실 비선 실세)마저 무너져버렸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는 이렇게 ‘결손’된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30년 만에 다시 열린 민주 광장이었던 것이다.

이 2016년의 촛불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이 소수의 권력층에게 유린당한 참담한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이 촛불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통곡이었고,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억울함이었으며, 재벌에게 착취당한 노동자와 서민의 울부짖음이었다. 꿈을 잃어버린 청년도 거기에 있었다. 이 촛불은 차별받아온 여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안보의 미명 아래 존엄성을 짓밟혀 온 수많은 서민들이 함께 설움을 표출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2016년 겨울의 광장은 그 분노와 설움을 숭고한 저항정신으로 평화롭게, 그리고 성숙하게 표출했다. 지도부가 없는 100만 이상의 인파가 토론도 없이 고도의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며 비폭력적으로 성숙하게 입법부인 국회를 압박했다. 지독히 이기고 싶어 했던 그들의 열망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국회’라는 수단과 ‘헌법’ 속에서 발견했다. 2016년 겨울의 촛불은 이렇게 광장에서 정치를 배웠다. 그리고 ‘광장’과 ‘제도권 정치’라는 오래되고 익숙한 이분법이 드디어 하나로 통합되었다. 2016년 광장의 촛불은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을 다시 회복시켰다.

아직 중대한 과제가 남았다. 80년 5월 항쟁이 점화한 민주주의를 2016년 촛불로 완성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촛불시민은 부당한 권력을 퇴진시키는 것이 끝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다. 촛불시민은 이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대의정치를 개혁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언론을 통제한 권력과, 이에 협력한 보수 언론과도 싸워야 한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훼손시킨 적폐세력도 청산해야 한다.

1980년 5월이 흘린 피는 87년 6월 항쟁으로 꽃 피웠고,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9년여 동안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은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지난해 터진 국정농단 사태는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를 잘 깨닫게 해준다. 5.18 민주항쟁이 끊임없이 왜곡되고 폄훼됐던 이유도, 이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전두환 같은 국정농단 주범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며 속여 왔기 때문이다.

촛불광장이 지난 6개월 동안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은, ‘대한민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 진리를 모든 시민들에게 다시 일깨워줬다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에겐 부패한 권력을 청소해야만 하는 임무 및 특권이 주어져 있다. 빠른 시일 내에 5.18 광주 학살과 4대강 비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등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들을 제대로 처벌해야 할 것이며, 국정원, 검찰, 사법부, 언론, 재벌 등에도 과감한 청산과 개혁을 감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80년 5월이 점화한 민주주의를 2016년 촛불 민주주의 혁명으로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글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된 ‘시그널’이란 드라마가 떠오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타임 슬립(time slip) 혹은 타임 루프(time loop) 스타일을 취한 스릴러 장르로, 3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범인을 잡기 위해 무전기 하나로만 연결된 현재의 프로파일러와, 과거 형사 간의 고군분투를 담은 드라마였다.

만일, 그런 드라마 상황이 현실이 되어서, 37년 전 그 광주 도청에서 항쟁하던 분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무전을 받아 “2017년의 대한민국은 현재 어떻습니까? 37년이나 흘렀으니 이젠 당연히 좋은 세상이 되었겠죠? 우리는 여기서 곧 죽을 테지만, 2017년엔 이 억울함도 다 풀어져있겠죠? 우리를 이렇게 만든 놈들도 다 죗값을 받았겠죠? 전두환… 설마 그가 아직도 멀쩡히 잘 살고 있는 건 아니겠죠?”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과연 그에게 뭐라고 답해줄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참으로 다행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정신을 헌법에 새기고, 5.18 민주항쟁을 모욕하는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행동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사나이다. 18번의 촛불집회에 모두 참석했으며, 촛불민심을 받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또한 세월호 뱃지를 항상 가슴에 달고 다니는 따뜻한 남자다. 그래서 그를 믿어보고 싶다. 아니, 믿어야 한다. 그리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2017년 5월의 새날이 밝아오고 있다. 잠시 눈 붙인 후에 다시 볼 태양은 따스하고 아름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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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 목사 / 카슬힐 호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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