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감상기] 부석사 무량수전과 소수서원 추체험((追體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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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를 바라보고 있는 관광객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호흡할 수 있는 모든 걸 사랑해야지. 만나는 이 모두를 포옹하고 마주치는 눈들에 따스함으로 인사해야지’

코로나 팬데믹이 극성을 부려 숨막히는 세월이 계속되면서 수없이 되뇌이던 속말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2년도 훨씬 더 지난 뒤 고국을 방문하고서야 이뤄졌다.

광화문에서 조우한 그리운 얼굴들과 함께 3시간 여를 달린 끝에 목매 보고 싶었던 영주를 흐르는 산안개 속에서 만났다.

언젠가는 기어코 만나 말을 걸고 싶었다. 우연히 오다가다 이뤄지는 만남이 아니라, 먼저 찾아가서 눈 맞추고 손 맞잡고 싶었다. 교과서 속 사진과 리듬으로만 체험해온 '영주/부석사/무량수전’을 오체(五體)로 느끼며 그 의미를 곰씹는 추체험(追體驗)을 하고 싶었다.

까마득한 초등생 시절부터 우리는 ‘부석사/무량수전’을 리듬으로 간직하며 살았던 터였다. 반공교육 시절, 토끼와 발맞추며 살던 촌놈에게 ‘북진/ 통일’ ‘개나리/진달래’외에 ‘부석사/무량수전’만큼 짝을 이뤄 리듬으로 기억된 단어는 결코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30분여를 올라가 만난 부석사 무량수전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하지만 고결한 선비의 아내처럼 수수하고 수더분함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무량수전이 극찬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굵으면서도 아래 위로 조금씩 가늘게 한 '배흘림 기둥'으로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처마를 넓게 하여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편안함은 부석사 무량수전 스스로가 갖춘 전통적 조형미나 건축양식에서만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부석사는 해남 대흥사나 김제 금산사 만큼이나 뒷배경과 산세가 고즈넉하지만, 이 역시 편안함의 전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답은 소백산에 있었다. 양지바른 명당에 터잡아 있을 지라도 저 멀리 소백산맥이 겹구름 병풍을 쳐 주지 않았다면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저 수수함으로만 남아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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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바라본 소백산
 
부석사 무량수전이 일찌기(1962) 국보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게 것은 ‘나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나됨’이 나만으로 되지 않듯, 자연도 마찬가지. 어울림이야 말로 부석사 무량수전의 가치를 한층 높였을 터였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인근에서 촬영했다는데, 소백산은 천년 고찰을 품은 명산이다.

영주에는 부석사 무량수전과는 사뭇 결이 다른 ‘선비세상’이 있다.

무려 1600억원을 들여 최근 개장한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지, 한글, 고전음악 등의 테마로 엮어진 우리문화 전시 체험장으로 지나치게 꾸민 흔적이 많아 막 부석사를 거친 사람에겐 인지부조화(認知不協和)를 안겨주기 십상이다. 거리나 주택 안쪽 마당, 심지어 전통 한옥의 특징인 토방(土房)조차 세멘트로 처리해서 선비가 살았음직한 마을로 보기 힘들 지경이다. 너무 깔끔을 떨면 사람이나 자연이나 불편함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영주 고적들이 빛이 나는 이유

하지만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영주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소수서원일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산맥과 조화를 이룬 영주의 보고(寶庫)라면, 순흥면 소백리의 소수서원은 산 아래 수목 지대와 어울린 보고라 할 수 있다.

소수서원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2019년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은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다음해 이곳 출신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 왕이 제사를 드리는 사당)를 설립하였고, 1542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특히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 서원, 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는 것)과 국가 지원을 요청했다. 1550년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었고, 따라서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날잡아 천천히 돌아보아야 할 소수서원은 곳곳에 깔린 고적 이름만으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행단(杏壇]), 취한대(翠寒臺), 백운동(白雲洞), 소혼대(消魂臺), 성생단(省牲壇), 경렴정, 홍전문(紅箭門), 강학당(講學堂), 직방재(直房齋), 학구재(學求齋), 제월루(霽月樓), 탁영대(濯纓臺), 장서각(藏書閣), 전사청(典祀廳), 영정각(影幀閣), 석간천(石間泉), 세연지(洗硯池), 활인심방(活人心方) 등.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을 들먹이며 고적에만 눈을 돌리고 수첩을 꺼내 드는 것은 소수서원에 크게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소수서원 곳곳에서 훈장 냄세만 맡는 것은 저 멀리에 소백산맥을 보지 않고 부석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숲을 외면하고 나무만 보겠다는 것이다. 실제 소수서원은 연조 쌓인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니, 제맛을 느끼려면 숲과 함께 고적을 보아야 한다.

애당초 우리 조상들은 뭔가를 축조하기 전에 ‘터’를 잡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 ‘풍수지리’를 그저 음양오행에 따른 미신적 구복(求福) 전통으로 여긴 것은 생각이 짧은 후손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련히 알아서 사찰과 서원들을 축조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국 곳곳의 역사 유적지들을 인문학적 생태를 기초로 소개하는 것은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문화 해설사의 열성을 설풋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심은 선조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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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기묘한 형태로 군집을 이룬 소나무와 은행나무 숲을 거닐자니 일찍이 소수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린 유네스코 탐사자들의 자연생태적 안목이 뛰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부석사든, 소수서원이든 자연과의 어울림이 없었다면 삭막한 절간이나 공맹 소리만 들려오는 공부방에 불과했을 터. 선조들의 자연생태에 대한 천년 안목과 지혜에 경탄을 표한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에서 즐기는 생태관광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예로우스톤 관광과는 단연코 차원이 다르다. 일차원과 이차원의 차이라고나 할까. 천년의 정신과 가치를 담은 고찰과 서원이 자연과 어우러졌을 때 나오는 그 질박함을 어디에 비할손가.

부석사와 서수서원을 오르내리며 뭔가 한마디 해야겠는데, 대체 말도 안나오고 머릿속도 운무로 가득차고 말았다. 태백산맥 한 자락을 묘사하기 위해 세 페이지나 할애한 소설가 조정래는 얼마나 걸출한 인물인가.

섣부른 묘사는 진실을 왜곡하고 오도하기 싶상이려니. 그저 예를 갖추어 ‘산은 산이고 물이로다’ 선문답을 되뇌이다 짐짓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아이고, 여그서 팍 주저앉아 살았으면 좋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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