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드참여는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격”

 

 

지난해 6월 3일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가 미중 갈등과 관련해 “일각에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自負心)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결정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가 미국만의 전유물이 아닐진대 한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국익에 상관없이 무조건 미국 편에 서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미 국무부의 자의적인 논평은 아전인수(我田引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대사의 소신 발언이 알려지자 국내 보수 야당과 수구 언론은 일제히 이 대사가 한미동맹에 균열을 초래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성토했다. 심지어 그의 해임까지 요구했다. 미중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주권국가 대사로서 당연히 할말을 했을 뿐인데 비난의 대상이 되다니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토록 한미동맹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막말을 쏟아낼 땐 끽소리도 못한 자들이 자국 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은 망국적인 숭미사대사상을 드러낸 것으로 비루함의 극치였다.

 

지난 3월 3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미중 갈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과 관련, “미국과 중국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이 미중 간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자주적 ‘등거리 외교’를 할 것임을 사실상 예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4월 11일 문정인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정 장관의 발언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면 한반도 평화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국 중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국익에 따라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초월적 외교’만이 한국이 살 길이란 주장이다. 표현만 다를 뿐 ‘균형 외교’와 같은 맥락의 등거리 외교와 초월적 외교가 미중 간 틈바구니에서 가능할 지는 한국의 쿼드(Quad) 참여 여부가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인 쿼드 참여를 묻는 중국의 질문에 “초청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혔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달 24일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한국 외교가 직면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쿼드 플러스’를 구상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또한 한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인데 초청 받은 적 없다고 시침을 뗄 수밖에 없는 한국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눈에 밟힌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쿼드 참여만큼은 피해야 한다. 쿼드 참여는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무모한 짓이다. 사드 사태 때보다 더 혹독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뒤따를 텐데 감내할 수 있겠는가. 과연 누구를 위해 그래야 하는가. 한국민이 중국의 경제 제재로 피눈물을 흘릴 때 이른바 혈맹이라는 미국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던가. 속수무책으로 또 당할 수 만은 없다. 그런데도 수구 언론은 연일 더 이상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미국 편에 서라며 쿼드 참여를 독촉하고 있다.

 

한편 “미국 정부 인사들이나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은 지난번 중국이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나왔을 때 미국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일종의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며, 한국이 쿼드 참여로 중국으로부터 또다시 불이익을 당할 경우 사드 사태 때와는 달리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같이 나이브한 사람도 없지는 않다. 남의 나라를 분단해놓고 통일 대신 항구적 분단(everlasting division)만을 획책하는 음험(陰險)한 자들이 미안함을 느끼면 얼마나 절실히 느끼겠는가. 막연히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란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알다시피 쿼드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용 4개국 지역 안보 동맹체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들러리가 되어 중국을 자극해 얻는 것이 무엇일까. 아니 우리가 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교역량이 훨씬 더많은 중국과 척을 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보 관련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혹시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지원과 한국의 쿼드 참여를 맞바꾸는 딜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동맹과 국익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적 결정에 따라 명분과 실리를 챙기려는 문재인 정부의 자주적 등거리 외교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하여 “미중 틈새에서 우리가 선택을 강요 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는 이 대사의 말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날이 반드시 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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