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1) 필요성
 2) 배경 및 목적
 3) 기본 방향 및 전략
 4) 제언내용 및 조사방법

 

2. 100주년 기념관 건립의 타당성
 1) 한인 진출 역사 주요 인물
  1-1) 장윤원 1920년 자카르타 첫발 한인사회의 원년
  1-2) 허영 영화감독
  1-3) 일본군 군속과 고려청년독립당
  1-4) 암바라와 성노예위안소
  1-5)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앞장 선 한인들

 

 2)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 진출 역사
  2-1) 한국남방개발(KODECO)
  2-2) 코린도그룹
  2-3) 삼환기업, 신한기공, 현대건설, 대림산업, 미원, 대한방적, 종근당
  2-4) 노동집약적 한인기업 진출로 한인사회 기반

 

3. 당위성 검토 결과
 

4. 결언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을 세우자

 

단재 신채호선생과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1965,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라는 말로써 기록으로서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7년은 인도네시아에 한인 진출 97년을 맞는 해이다. 본 고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을 세우자”는 제언을 통해 한인동포들과 한인사회의 100년 역사와 다가올 100년의 로드멥을 함께 그려내 보고자 기획했다.

 

1. 개요

1) 필요성
–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 제고의 필요성 제기
– 재인도네시아 한인커뮤니티의 거점 필요
– 재인도네시아 한인커뮤니티의 창작 활성화의 기반 필요

 

그 동안은 정부 또는 공기관 주도의 문화예술지원정책을 시행해 왔으나, 기존의 지원방식으로는 미흡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자카르타에 한국문화원 등을 개관하여 공연·전시·강습 등을 통해 양국 간 문화예술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나, 문화예술의 결과물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주목적이며, 다양한 계층의 문화예술창작 등 문화예술인들의 발표 및 상시전시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인사회 각계각층의 문학·문화예술 활동에 비해 안정적인 전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가 대두되고 있다.또한 사라져가는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역사물을 보관하고 전시할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공간이 없다. 이는 한인사회 정체성 정립과 인도네시아 속에 한민족의 공동체가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공간 건립의 필요성이 더욱 일어나고 있다.

 

2) 배경 및 목적
– 인도네시아 내 급격한 대내외적 환경 변화와 대 외국인 정책 혼선으로 지속적인 위기감 증대
– 걸어 온 100년 역사와 다가올 100년을 위한 한인사회 방향성 제시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정국불안으로 촉발된 경제적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루피아화 가치의 하락추세가 장기화되자, 하청 수출기업들은 인도네시아로 진출과 계속 잔류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온 측면이 있다.

 

반면, 최근 전자 신발 봉제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오더 감소로 이어져 한인기업의 폐업과 지방이전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자카르타 중심으로 한인기업들이 밀집된 수도권의 최저임금이 U$320대로 인상되어 노동집약적 산업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100달러 대 최저임금이 수 년 사이에 300달러로 급격한 추세로 인상됨으로써 생산기지의 지방이전이 줄을 서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노동집약적 업종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때 늦은 지방이전이 허가문제 세무문제 종업원 확보 문제 오더 급감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에 더불어 인도네시아 정부의 각종 인허가 규제와 세무강화로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외국인 근무제한(2016, 취업허가비자 8,424명)으로 최대 외국인 커뮤니티(총인원 : 40,741명 (’14), 영주권자 : 1,096명 (’14), 일반체류자 : 38,711명 (’14), 유학생 : 427명 (’14), 외국국적 : 507명 (’14))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내 한인사회도 30% 감소 추이를 보이고 있다. 급기야 2016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한국인 수(2016, 인도네시아 관광청 발표)가 359,468명에서 343,887명으로 4.33% 포인트 줄면서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회적 요인으로 아세안경제공동체가 가동되면서 6억 2천만명의 인구와 교역랑 2조 5천억 달러 그리고, 경제성장률 3~6% 대 아세안 시장이 열리리라는 기대감은 중장기 한국경제의 디딤돌로 기대를 부풀리며 이미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으로 인한 장밋빛 청사진 속에 한인동포 대응력 정보부족한 것 또한 현실이다. 아세안국가 외국인 비자발급 강력 제한으로 각국 한인동포 수 급감하고, 아세안국가 자국민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민족주의, 종교 극단주의 팽배로 인한 중산 보수층 증가로 갈수록 외국 진입장벽 높아져만 가고 있다. 또한, 인허가제도 강화와 경제규제, 비자제한으로 동남아국가 한인사회는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 같은 뒤늦은 혼란과 자국 기업의 손실은 한국 정부 관련기관이 현행법 해설과 안내에만 치중해 왔고, 미래지향적인 논리가 부족한 로드맵 없는 장밋빛 청사진으로 닥칠 전망 예측에 실패함으로써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중국발 사드여파로 아세안국가로 몰려드는 한국기업들로 한인사회는 다시금 황금기회를 맞고 있다. 중국행 한류행사와 투자기업들이 아세안 동남아 국가로 급선회하면서 나타난 특수 현상으로 지난해 중국발 사드폭풍 이후에 인천- 자카르타 항공노선이 연중 90~100%로 고공매진 중에 있다.

 

이에 동포사회는 “神이 내린 기회로 투자이전 기업들이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T/F를 만들고, 올바른 가이드 맵을 제시해 주어야”한다는 우려와 당부의 말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비관과 낙관론이 중첩되어 비등하는 현실을 우려한 자성의 목소리로서 한인진출 100주년 기념관 설립을 통한 다양한 홍보와 교류 시도를 통해 민간 주도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 확립을 통한 다가올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 기본 방향 및 전략

지난 1975년,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이재설 대사(2대)는 “한국대사관 부지를 매입할 자금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그 이듬해인 1976년, 한인 진출기업들은 코리아센타 유지재단 명의로 매입한 부지 가운데 3,830m2를 한국정부에 기증하여 현재의 대사관 부지(한국회관 부지는 3,716 m2)가 되었다.(자료참조 코리아센터유지재단)

 

이는 한국정부도 하지 못하는 재외공관 건축의 역사를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인사회가 대신해낸 사례를 자랑스러운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전 세계 한인동포사에 기록되고 있다.

 

4) 제언내용 및 조사방법
– 수도권과 지방에 흩어진 한인사료 자료조사
– 2017년 5월 기획 6-8월 자료조사 9월~10 기사정리 보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 설립’을 제언의 골자로 하여,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본 지를 통해 사설을 게재하고 2017년 5월 기획하여 당 해 6월에서 8월까지 수도권·지방에 흩어진 한인사료 자료조사를 진행해 9월~10월에 거쳐 기획탐사보도 기사로 정리 보도한 바가 있다.

 

2. 100주년 기념관 건립의 타당성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어렵사리 공감할 수 있는 추억으로 출입국 관문인 수까르노하따 공항에 도착한 첫 소감을 떠 올릴 수 있겠다.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와 비교적 덜 정돈된 주변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 중에 비교적 선진문물에 익숙해진 한국인으로서의 다소의 문화적 우월감을 갖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우월감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설정하고 읽혀져야 할 대목이 있다.

 

97년 전 1920년 9월 20일 조선한인 장윤원은 조국을 되찾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인도네시아 수도 바타비야(현 수도 자카르타의 옛지명)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잃은 시린 망국의 한을 안은 채,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우위에 있던 인도네시아 땅에 국적 없는 망국민의 신분으로 도착했을 위축된 심정으로 첫 발을 디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았지만 네덜란드의 신탁통치와 싸워야 했고, 냉전의 소용돌이 속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625 사변의 대한민국에 143,706달러의 전후복구 지원금 전달한 전력이 있는 국가이다.

 

이에 한인포스트는 지난 2014년 광복 70주년 사설에서 “보은의 나라 인도네시아”라는 제목으로 전후복구를 통해 한강기적을 이루는데 인도네시아의 도움이 컷고 이제 은혜로 갚아야 한다고 게재했다.

 

1) 한인 진출 역사 주요 인물

 

1-1) 장윤원 1920년 자카르타 첫발 한인사회의 원년

장윤원 일가족

<장윤원 일가족>

 

사료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초석을 닦은 첫 인물로 장윤원을 꼽는다고 한인사회 연구가 김문환씨는 전했다. 김문환씨에 따르면 독립운동가인 장윤원은 일본 유학 이후 은행에 근무하면서 3․1 운동 자금 지원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은행과 당국에 적발되면서 그는 중국으로 탈출해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임시정부 수립 이듬해인 1920년 9월 20일 장윤원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낯선 땅 바타비아 (Batativa, 자카르타의 옛 이름)에 망국민의 신분으로 도착하게 된다.

 

그의 아들 장순일은 자카르타의 명문 가톨릭 사립대학인 아트마자야 (Atmajaya Univerisita)의 공동 설립자가 되면서 인도네시아를 재건할 인재 양성에 눈을 돌렸다.
여한종 공사의 활동

 

또한 장녀 장평화 여사는 여한종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3등 서기관(이후 대사)과 결혼하면서, “독립투사 양칠성 한국이름 찾아주기 운동” 등 초기 동포사회 기반을 위해 노력해 온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

 

장윤원 일가는 일본군 군속으로 이곳까지 끌려온 조선한인과 일본 패망 후에도 자바섬에서 조직된 한인거류민회와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에 일조하게 된다.

 

이에 장윤원은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디딤돌로 초석을 세운 인물로 자격이 충분하다. 장윤원은 비록 국가에 직접적인 공헌한 역사적 사료가 없어 포상을 받지 못했지만 한인사회 1세대 첫 인물로 존중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그의 첫 발걸음을 한인사회 원년으로 잡고자 한다.

 

1-2) 허영 영화감독
허영감독 huyung

허영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도네시아 영화감독, 1908∼1952)감독은 일본에서는 히나츠 에이타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닥터 후융으로, 세 개의 이름으로 세 개의 인생을 살다 1952년 사망한 문화예술인이다.

 

일본군 칭송영화 제작으로 인도네시아 자바로 진출한 이후, 1945 년 1 월 조선 군속의 고려독립청년당 사건과 암바라와 의거 이후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1945년 9월 1일 발족한 ‘재자바조선인민회’를 후원했다. 조선인민회는 일본 패전으로 자카르타에 남아있던 군속, 민간인 천여 명이 규합하여 만든 독립운동단체였다.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원하던 한국인 군속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살아남은 조선인 군속들은 고국으로 귀환했지만 허영은 친일활동 전력을 수치로 여기고 조국으로의 귀환을 단념하기에 이른다. 이후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닥터 후융이란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인도네시아에 정착하게 된다.

1952년 2월 9일 사망까지 6년 반 동안 연극과 영화에 종사하면서, 영화와 연극을 통해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의 편에서 혁명독립전쟁에 참가한다.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 프리에다 (Frieda)’를 제작해 국민 감독의 반열에까지 오른다.

 

인도네시아 영화인들은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평가하고 그를 추모하고자 자카르타 꾸닝안에 있는 이스마르 영화관을 지어 기념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허영감독이 뭍혀있는 공립묘지는 누구하나 찾는 이 없어 쓸슬하기만 하다.

 

1-3) 일본군 군속과 고려청년독립당

암바라와 포로수용소 초소

  <암바라와 포로수용소 초소>

 

일제 강점기의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발자취는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투영해 주고 있다. 1942년 3월 동남아시아 전역을 점령한 이후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인도네시아 스마랑 화란연합군사령부에 운영하면서, 포로를 감시할 인력을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차출해 배치했다. 1944년 조선에서 차출된 포로감시원 1,400명이 자바섬 스마랑에 배치된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일본군 군속으로 수용소 감시병으로 끌려 온 조선인 군속들은 1944년 12월 29일 수모워노 교육대 취사장 뒤편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이날 10명은 혈서맹세로 독립투쟁하다 암바라와 의거로 적발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고려독립청년당의 손양섭·민영학·노병한 3명은 이곳을 탈출해 1945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일본군 병참기지를 공격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그들은 일본군 병참기지를 공격하고 일주일간 산악전투로 항거하다가 모두 옥수수 밭에서 자결했다. 1945년 8월 15일 종전 이후 대 다수의 조선인 군속들은 전범자(戰犯者)로 몰려 사형 또는 징역형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고려 독립 청년당원으로 적발되어 7년형을 받은 이상문 열사는 해방 이후 애국지사로 선정되었고, 고국으로 귀환한 이후 구례군수를 지내다 2014년 96세로 소천(所天)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자바조선인민회를 조직해 2대 회장(1946)을 역임하기도 했다.

 

1-4) 암바라와 성노예위안소

 

암바라와 위안소

<암바라와 위안소 70여채가 군사보호지역에 72년째 흉물로 방치되어있어 전시유물관으로 보호가 시급하다>

 

일제는 23명의 조선한인 여성들을 동부자와 스마랑 근교 암바라와 수용소에서 성노예위안부로 강제 배치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참히 짓밟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성노예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앞에 고 정서운 할머니는 “내가 스마랑 암바라와에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첫 증언했다.

 

이에 한인포스트는 2014년 “스마랑에 위안부소녀상을 세워야 한다”고 게재했다.암바라와 일본군 성노예수용소는 현재 전 세계 유일의 현존하는 포로수용소로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보존 중에 있다. 하지만 70여채 일본군 성노예수용소는 72년동안 방치돼 흉물이 되어 전쟁유적지로 보존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누구하나 거들 떠 보는 이 없다.

 

1-5)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앞장 선 한인들
양칠성, 우종수, 이길동, 이종렬, 조민산 등 148명의 조선인 군속들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인도네시아를 네덜란드는 다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되찾겠다는 야욕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조선인 군속 양칠성 등은 게릴라 부대인 ‘팡에란 바팍’(왕자부대)을 이끌고 네덜란드 군대와 싸우다 1948년 체포돼 이듬해 8월 총살형을 당했다. 당시 함께 투쟁했던 인도네시아 동료들이 정부 요직에 오르면서 ‘독립영웅’으로 지정되었다. 1975년 가룻 뗀조라야 영웅묘지로 이장되었다. 양칠성의 묘비는 한 일본 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여한종 공사의 노력으로 인도네시아 이름이 아닌 한국명 ‘양칠성’으로 고쳐 새겨졌다.

 

1-6) 인도네시아, 6.25전쟁 복구에 143,706달러 현금지원…“은혜의 나라”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인도네시아는 1952년 143,706달러 현금을 보내주었다. 당시 1952년 143,706달러 현금은 1951년 일본의 143,706달러 상당의 현물지원과 같은 금액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한인포스트가 6.25전쟁 기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발견한 자료에 의하면, 65년전 인도네시아는 유엔 비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을 통해 한국지원에 나섰다. 한편, 인도네시아가 6.25전쟁 복구에 143,706달러 현금을 지원한 사실에 한인동포들은 한결같이 놀라면서 “처음 듣는 소식이다” “65년 동안 우린 왜 이걸 몰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인도네시아는 은혜의 나라”라고 전했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음에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발전을 일궈내 오늘날 세계 주요 20개국(G20) 반열에 들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결실이지만, 6·25전쟁 당시 이뤄진 세계 각국의 물자지원이 대한민국 수호에 일조하고 재도약의 밑바탕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에 한인동포들은 ‘은혜의 나라 인도네시아’에 보답해야 한다면서 ‘보은의 나라 코리아’가 되기를 바랬다. 특히 2015년은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극복한, 광복 70년 독립 70년해로 중요한 의미를 맞고 있어, 65년전 6.25전쟁과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인도네시아와 함께 한국 인도네시아 상생의 해로 승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2)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 진출 역사

 

2-1) 한국남방개발(KODECO)
한국남방개발(대표. 최계월 회장)은 한국의 해외투자 1호 기업이고 인도네시아 첫 해외투자법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남방개발은 1968년 2월 한국정부로부터 450만 달러의 해외투자 허가를 받아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남부 바투리진에서 원목 개발과 목재 석유개발에 앞장서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 자원 에너지 분야에 선두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 공로로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이 최계월 회장에게 인도네시아 최고공로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2) 코린도그룹

코린도 그릅 칼리만탄 조림지 

<코린도 그릅 칼리만탄 조림지>

코데코의 뒤를 이어 인니동화 (현 코린도그룹 ), 경남교역, 한니흥업, 아주임업 등이 인도네시아의 산림개발업에 진출하게 된다. 1970 년대 초에서 80 년대 초까지 한국의 합판 산업은 ‘나무 없는 나라에서 나무를 원료로 연간 약 1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업종에 등극하게 된다.

 

현재는 조림사업에 11개사가 진출해 3만 7,247㏊의 조림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산림조합중앙회는 2011년부터 현지에서 속성수와 고무나무 등의 수종으로 조림사업을 시작해 2015년 자바주에 8424㏊, 칼리만탄에 1만3300㏊ 등 총 2만1834㏊의 조림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코린도그룹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조림지는 96,029ha이고 실제로 나무를 식재한 면적은 75,000ha에 달한다. 이는 서울면적의 2배이고 조림면적은 1.2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2-3) 삼환기업, 신한기공 , 현대건설 , 대림산업, 미원, 대한방적, 종근당

 

1970년대부터 건설업체 삼환기업, 신한기공, 현대건설, 대림산업을 비롯해 식품업 미원, 섬유업 대한방적, 제약 종근당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 진출로 한인경제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2-4) 노동집약적 한인기업 진출로 한인사회 기반

인도네시아에는 전자, 섬유, 신발, 가발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 등이 40년 전부터 진출해서 한인경제를 이끌고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노동집약업종인 전자 봉제 신발업종이 인도네시아 진출해 자리 잡기 시작해. 전자업종 100여개사, 봉제업종 300 여개사, 신발업종 300 여개사, 서비스 업종 진출로 2000여개 한인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인프라 건설분야에 진출도 만만치 않다. 자원강국인 인도네시아에서 석탄 석유 가스 고무 원목 개발과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에 한인기업들이 큰 역할을 담장 중이다.

 

중소기업 진출로 인한 교역량이 증가 추세로서 풍부한 인력과 2억 5천만 인구의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진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큰 폭의 성장세로 한인기업은 2000여개로 늘어난 상태이다.

 

반면, 한국 인도네시아 교역량 현 35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인도네시아 5대 교역국이면서도 투자국의 지위를 구가하고 있다.

 

3. 당위성 검토 결과

 

해외 각국에 진출해 있는 한인사회의 규모는 전체 총 인구의 %에 달하는 720만명, 전 국민의 15%에 이르는 규모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국국제경제연구소(IIE)가 발표한 7백만 재외동포의 총 자산가치는 1200억 달러로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0분의 1일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서는 우리의 자동차ㆍ가전ㆍ통신 업체의 해외시장 1차 타깃이 재외동포라는 점이 이를 보여 준다(재외동포재단 <세계를 품은 한인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 한미관계의 기본은 “200만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례로, 개혁ㆍ개방이후 중국이 급성장한 배경으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6,000만~7,000만 화교의 인적ㆍ물적 투자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절반 이상이 화교에서 나온다. 인도 역시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인교(印僑ㆍ재외인도인)가 없었다면 IT 강국으로의 부상은 어려웠을 것이다.

 

8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대인의 해외 민간조직이 이스라엘의 글로벌 정치ㆍ경제적 위상 제고에 기여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더욱이, 성장정체의 중진국 함정에 처한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세계 각국에 진출해 있는 한인사회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현실적이라 하겠다.

 

이처럼 재외동포의 규모와 국위선양 기여도는 지대한 반면, 이런 외적 규모와는 달리 재외동포가 우리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조국과 고국의 역사를 돌려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들의 해외 진출역사의 기록과 전시, 그것이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정의해 주리라는 기대는 결코 비약으로 들리지 않는다.

 

반면, 대 부분의 한인이 미·일·중·러에 집중해 분포되어 있는 것은 주지의 현실이다. 그 만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기타 국가에 진출해 있는 한인들에겐 규모의 차이만큼이나 고국의 지원과 관심에서 소외되어 왔다고 체감하고 있으며, 이는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 결여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인포스트는 지난 2011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진행했던 한국의 이미지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 포괄적인 개념 측면에서는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좋다”고 대답한 반면, 구체성을 띤 설문에는 부정적인 대답이 많아지는 경향을 파악해낸 바 있다.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좋다”는 이미지는 연속극이나 영화, 전자제품, 스포츠 경기, 음식문화 등 비교적 포괄적이고 간접적인 부분에서 드러나는 반면,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의 이미지는 모두 직접적인 ‘관계’ 가운데서 싹트고 자라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반면, 월드뱅크는 전망보고서를 통해, 2030년이면 인도네시아의 국민총생산(GDP)이 한국과 독일을 추월해 세계 13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즉, 이는 인구 3억명(세계 4위)의 거대 시장이 열리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는 우리가 인도네시아에서 최대 외국인 커뮤니티인 한인사회와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하며 나눌 이야기가 많다는 기회적 요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내 한인사회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인사회 선진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역사와 그들이 인도네시아 독립과 발전에 기여한 역사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의 요구는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 가려는 후진들에겐 지상의 당위성을 갖는 것이다.

 

그들이 걸어 온 100년의 역사가 그들의 후손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앞으로 걸어 갈 100년의 이정표가 되리란 주장은 지극히 당위한 주장인 것이다.

 

4. 결언

 

1900년대 초반, 대 다수의 동아시아 국가는 왜곡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열강의 침탈 전쟁인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고스란히 민족문화 말살과 강점을 당했고, 연이어 1900년대 중반, 우리 민족은 동족상잔과 분단이라는 참화까지 겪고 나서야 절반의 평화를 일궈 냈다.

 

그 세계대전 속 일제강점에 저항하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선대들의 피와 수난과 눈물로써 일궈 낸 정착 과정이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의 역사다.

 

오랑 아싱(orang asing)이란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외국인과 자신들을 구분하여 부르는 단어이다. 오랑 꼬레아(orang korea)란 그 외국으로서의 한국인을 특정하여 규정하는 단어이다.

 

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00년 동안의 인도네시아 역사 속 한인은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형제의 관계에 더 가까웠다. 따라서, 가장 적절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규정하는 단어로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의 사우다라(saudara)가 되어야 마땅하다. 즉, “Insprasi Orang Korea” “영감있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1945년 1월, 조선군속들이 조선인과 인도네시아인 모두에게 공동의 적인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고려청년독립당을 결성해 항거하다 적발되어 자결하거나 전범자로 몰려 처벌당하는 공통의 뼈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일제강점이라는 다소 과격한 사례를 굳이 일례로 드는 것은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동)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한 치의 거짓이 없는 두 나라의 잊어서는 안 될 엄연한 역사이기에 그 투쟁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하겠다.

 

그러한 이유로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은 한인 후배 세대에게는 그들의 정체성을 재고시켜 줄 것이다. 인도네시아 현지인에게는 함께 피를 나눈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의 형제로서 한인 역사의 의의를 일깨워 주어 화합과 상생의 활로를 함께 고민하는 공감과 축제의 장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2017년은 재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97년을 맞는 해이다. 강점과 분단을 딛고 세계 속에 한인사회를 견인해 온 이민 1세대들에겐 회한과 감회의 100년을 목전에 둔 해이다. 이제 우리들이 후손들에게 “다른 100년을 위한, 다음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100년 후에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인건비에 치중한 수출 제조업중심으로 한인기업은 아직 남아 있을까? 100년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청사진 로드맵은 어디엔가 준비되어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이 100주년 기념관이다.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을 그 초석으로 삼으라는 제언은 단순한 전시성 이벤트가 아닌, 한 개인의 인생역전의 기록도 아닌, ‘5만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시대를 견인한 한인 진출 역사의 산 기록’의 단편인 것이다. 나아가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100주년 기념관’은 선대들이 후대에게 남기는 또다른 100년 이정표가 될 것이다.
<기사. 정선 haninpo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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