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전하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5)

동병상련의 아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달리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27066892_1513653265399609_6070590782308747894_n.jpg

 

 

트빌리시를 벗어나자 바로 대초원지대로 들어선다. 삼림지대와 사막의 중간지점에 나타나는 이런 스텝지역에는 수목은 없고 비가 내리는 봄철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여름철 건기에는 말라죽어 불모지(不毛地)로 변한다. 양떼들이 곳곳에서 풀을 뜯고 있다. 양떼들 사이에는 목동이 하나나 둘이 항상 있다. 대게의 경우 한 사람의 목동이 하루 종일 양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드넓은 벌판에서 목동은 작대기 하나 들고 하루 종일 소일을 한다. 무료한 목동은 그 작대기로 돌멩이를 때려 저만큼 있는 토끼 구멍에 집어넣기를 시도한다. 그것이 골프가 되었다.

 

이들은 끝없는 벌판에서 파란 하늘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몽상에 젖을 것이다. 하늘에서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든지, 알퐁스 도데의 ‘별’의 이야기처럼 주인집 딸이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돌아가다가 불어난 물에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와 함께 밤새도록 별을 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이렇게 비바람이 부는 날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나는 일들은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날 것이다.

 

 

26907767_1513652748732994_5043696312476859902_n.jpg

 

 

내가 이런 악천후 속에 달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두려움을 벗어던지지 못하듯이 양치기들도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눈비가 온종일 내리며 갑자기 어두워질 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무렵 사랑스런 그녀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잠시 모습만 보여주고 사라져가는 그녀를 소리를 부르며 쫒아가서 세우려하면 그녀는 나무가 되어버린다. 또는 그녀가 가져다 준 맛있는 점심을 정신없이 먹다가보면 흙을 먹고 있다.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벌판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달리고 있는데 마침 바로 길 옆에서 양떼들과 함께 있는 목동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나누는데 양처럼 순한 눈을 가진 그에게서 양 특유의 냄새가 풍겨온다. 양떼들을 자세히 보면 그 무리 속에 몇 마리의 염소가 섞여있다. 염소란 놈은 질투가 심해서 자기 외에 다른 놈들이 사이좋게 붙어 지내는 꼴을 못 본다고 한다. 둘이 사이좋게 붙어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떼어놓는 일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로 삼는다. 양털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염소를 함께 키우는 것이다.

 

 

26993786_1513652515399684_5509669309957671310_n.jpg

 

 

국경은 한산하였지만 군인들이 입국절차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뇌리를 떠오르는 것이 ‘독재국가’였다. 어렵사리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앞에서 우리를 맞는 것은 거대한 철문과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얼굴의 거대한 초상화였다. 철문은 문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볼일이 없겠지만 저 초상화는 시시대대로 내 시야에 나타날 것을 생각하니 결코 기분 좋은 기억만 남기지 않겠구나하는 걱정이 앞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사회의 정의로움과 행복지수는 비례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정당하고 당당하게 느낄 때 훨씬 행복하다.

 

날씨는 며칠째 우중충하게 가는 비가 내리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도 우울해 보인다. 입의 옷의 색상도 대부분 검정색 계통의 옷으로 어두웠고 사는 집들도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나라 어는 곳이라도 지하 3m만 파면 석유가 나온다는 산유국의 풍요로움은 찾을 수 없고 허름한 집들과 연식(年式)이 오래된 자동차들이 찌든 삶은 말해주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달리는 자동차로 내 기관지는 몸살을 앓을 지경인데 검문소를 지나다 본 그 비호감 사내의 초상화가 또 나타나 야릇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사실 저런 비호감의 사내와 여자를 국내에서도 뉴스 때마다 봐온 나였지만 이렇게 적응이 안 된다.

 

 

27331966_1513652352066367_6567459272219725668_n.jpg

 

 

인구 9백만 명, 크지는 않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참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나라이다. 아시아인도, 이란인도, 터키인도 아닌 사람들의 생김새가 우선 오묘하다. 우울하며 경직된 모습 속에 감춰진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이 나그네에게 묘한 분위기를 금세 느끼게 한다. 반사막에 가까운 스텝지역에서 생산되는 기름은 아제르바이잔 국가경제의 큰 원동력이 될 것인데 사람들의 삶은 기름지지 않으니 거대한 초상화 속의 그 사내의 얼굴과 똥배가 기름지게 하는 모양이다.

 

19세기후반의 제정 러시아를 살찌우기에 안성맞춤의 지역이었고, 이후 구 소련연방에 편입되어 1991년 독립할 때까지 그 착취(搾取)는 계속되어왔다.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이루어냈지만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전 역사를 통해 독립을 유지한 것은 통틀어 100년이 체 안 된다고 하니 이 나라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나그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제르바이잔도 우리와 같이 역사의 참혹한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이 있으니 그것이 1,300만에 이르는 이산가족이다. 오스만제국과 제정 러시아와의 게임에 의해 아제르바이잔은 나눠졌다. 아제르바이잔 남쪽 지역은 지금의 이란지역에,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러시아가 갈라먹음으로서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이산가족이 생겼다. 언제나 강대국들의 이권문제로 약소국들이 희생되는 처절한 생태계 형태가 지구의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제르바이잔도 분단국이나 다름 아니었다. 지금도 카스피해를 둘러싸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나라들을 상대로 미국과 서방, 그리고 러시아가 살점하나라도 더 뜯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27067873_1513652215399714_4640269990387457704_n.jpg

 

 

양치기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칭기즈칸과 다윗 왕이다. 늘 양을 돌보며 몽상에 잠겨있던 이들이 큰일을 해낼 수 있던 원동력은 열정이다. 몽상 속에 그려지던 일들이 뜨거운 열정을 만나면 안개 속에 갇혀 있던 희미한 강 풍광이 드러나듯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의 기개(氣槪)와 지략(智略)은 양을 돌보는 따스한 마음과 그 마음에 드넓은 들판을 품고 눈에는 푸른 하늘을 담은 데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서양이나 중동 쪽의 동화에는 목동이 왕이 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나그네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김광석의 ‘광야에서’를 흥얼거린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 |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나는 김구선생의 꿈 file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6)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꾼다”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어제 우리가 찾아낸 호텔의 이름은 캐러번사라이이다. 그 옛날 캐러번들이 묵어가던 캐러번사라이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옛날 그 캐러번...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나는 김구선생의 꿈
  • 시몬느 베이유의 기도

    [호산나칼럼] 헌신의 기도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이 몸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 당신을 위해 쓰게 하시고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시몬느 베이유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짧은 이 기...

    시몬느 베이유의 기도
  • 이민자들, '대마초 합법화' 함정 조심해야

    상당수 주들 허용 불구 연방법은 소지, 흡연, 복용, 재배 등 여전히 금지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위일선 변호사(본보 법률자문) = 2018년 1월까지 플로리다를 포함한 미국의 30개 주가 의료용 대마초(마리화나)의 사용을 합법화 했고, 10개 주에서는 의료와 상관없이 대...

    이민자들, '대마초 합법화' 함정 조심해야
  • 매일 도시락 들고 출근, 성공에 방해

    때로 고객, 직장 동료 및 상사와의 식사는 긍정적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알뜰 살림꾼 처럼 보입니다. 도시락은 2-3 달러 이내로 준비할 수가 있겠지만 외식을 하면 10 달러 정도 든다는...

    매일 도시락 들고 출근, 성공에 방해
  • 전공은 지원 학교 결정에 주요 요소

    [교육칼럼] 대입 전 전공에 관심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칼럼니스트) =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느 학교에 지원할 지를 결정해야 하며, 지원할 대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 엔젤라 김  ...

    전공은 지원 학교 결정에 주요 요소
  • 플로리다 주도 탤러해시에는 미 남부의 고풍이 숨쉰다

    [탐방기] 올랜도와 마이애미에 가려져 있는 도시, 플로리다주의 역사 보고   ▲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 시기에 플로리다 주도는 동쪽의 세인트 어거스틴과 서쪽의 펜사콜라 등 2개였으나, 이후 양 도시 중간지점에 위치한 탤러해시가 주도로 정해졌다.   (올랜도=코리...

    플로리다 주도 탤러해시에는 미 남부의 고풍이 숨쉰다
  • 잘못된 안경 사용, 시력 저하 부른다

    [생활칼럼] 안경 다리와 코받침 조절도 개인이 하면 곤란, 전문가에 맡겨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많은 사람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사용법이나 주의사항, 관리법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어 시력을 망치는 경우를 ...

    잘못된 안경 사용, 시력 저하 부른다
  • 항일운동 3대성지 함경도 북청이야기 file

    ‘조선의 나폴레옹’ 김경천장군 북청인물 진짜 태극기의 섬, 항일운동 성지 소안도(3)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나는 소안항에서 완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 다음 행선지로 거제를 생각했다. 완도에서 거제로 가는 방법을 확인하니 배편은 없고 순천을 거쳐 진주...

    항일운동 3대성지 함경도 북청이야기
  • 당당히 역사의 아침을 맞읍시다 file

    사순절 이야기 - 다섯번째 편지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잠언 7:17 ... <제 침대에는 요를 펴고 이집트 산 화려한 천을 깔아놓았답니다. 자리엔 몰약에다 침향과 육계향을 뿌렸지요. 가서 밤새도록 놀며 한껏 사랑에 취해 봅시다.>   SANA (Singapore Anti N...

    당당히 역사의 아침을 맞읍시다
  • 별나라형제들 이야기(31) file

    로스웰사건의 비밀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5. 우주에는 갖가지 모습을 가진 지성체(知性體)들이 많이 있다.   새 모습, 파충류 모습, 곤충 모습, 물고기 모습 등이다. 심지어는 나무 모습의 지성체도 있다. 인간은 이들을 그냥 식물, 동물, 곤충 등으로 분류...

    별나라형제들 이야기(31)
  • ‘시련을 반기는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file

    장기간 경제발전의 챔피온 국가 격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국가인 대한민국은 장기 경제성장에서 세계 선두 국가 중 하나이다. 한국은 과거 경제적으로 낙후(落後)된 나라였으나, 많은 어려움과 역경, 천연자원의 극심한 부재 등에도 불구하고 최근 60-70년 ...

    ‘시련을 반기는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
  • NZ, 제2의 알바니아가 될 것인가

        중국이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서방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뉴질랜드가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과 어떤 관...

  • 급류 타고 있는 한반도… 불안 속 긍정 기류 지속

    [시류청론] 트럼프 초강경파 내세우자 김정은 전격 중국 방문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북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시진핑 북중정상회담이 3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사전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열렸다. 김 위원장 취임 후 7년 만에 이루어...

    급류 타고 있는 한반도… 불안 속 긍정 기류 지속
  • 유일한의 기도 file

    [종교칼럼] 성찰의 기도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삶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인식할 수 있고, 오늘날 저희들에게 주어진 좋은 것들을 충분히 즐기며, 명랑하고 참을성 있고, 친절하고 우애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유일...

    유일한의 기도
  • 북미정상회담 낙관은 이르다 file

    CVID와 CVIG 간의 위험한 곡예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 Guarantee for Peace process       2017 년 일년 내내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필자의 화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었다. 북미 양국의 지도자간에 오고 가는 말폭탄의 수준이 ...

    북미정상회담 낙관은 이르다
  • 타로카드를 뽑았더니.. file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나는 타로카드를 오래 전에 배웠다. 정신세계원 다닐 때부터니까 15년은 넘었을 것이다. 한창 때는 월드컵 게임 스코어까지 맞췄다.   내가 사용하는 카드는 가장 일반적인 라이더 웨이트 덱인데 비싼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

    타로카드를 뽑았더니..
  • 양치기 목동의 리더십 file

    유라시아에서 전하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5) 동병상련의 아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달리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트빌리시를 벗어나자 바로 대초원지대로 들어선다. 삼림지대와 사막의 중간지점에 나타나는 이런 스텝지역에는 수목은 없고 비...

    양치기 목동의 리더십
  • 남 따라 하는 사업, 말썽 될 수도

    독특하고 창의적인 길 모색해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근면하고 머리가 좋다고 알려진 한국인들의 단점을 지적하라면 “잘 된다는 사업을 너도 나도 따라 하는 성향”이라고 말 하면 별로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의 한...

    남 따라 하는 사업, 말썽 될 수도
  • 적성에 맞는 전공, 신중하게 찾아라

    [교육칼럼] 학생 능력과 미래 직업 등 고려해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지난 주에는 학생 자신에게 가장 좋은 전공을 언제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 지 몇 가지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도 지난 번 칼럼과 연결하여 전공 ...

    적성에 맞는 전공, 신중하게 찾아라
  • 독서로 극복한 암 file

    내가 책을 사모았던 이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지금 한국 출판업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고 한다. 전자책 때문에 책 읽는 인구가 날이 갈수록 줄고 스마트폰까지 합류해 독서욕을 말살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니 한인 이민사회도 별...

    독서로 극복한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