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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해외유학, 여행, 비즈니스 등이 자유로워지면서 재불한인사회도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1990년대 만 해도 한불가정은 손에 꼽을 만큼 그 숫자가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2000년대 중반들어, 유학생으로 왔다가 프랑스에 정착하는 한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한불가정도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90% 이상이 아내가 한국인인 경우다.

재불한인여성회에서는 2018년 기준, 약 1000여 가구 정도의 한불가정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동거, 시민연대협약(PACS), 결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관계가 있다. 프랑스에서 결혼을 했더라도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정확하게 한불가정 수를 집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한불가정의 생성과정과 추이를 살펴보기 보다는 현재 파리권에 거주하는 15가구의 중산층 한불가정(1~3명의 자녀)을 표본으로 한불가정의 현황, 자녀교육, 가치관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들 가구가 한불가정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통해 한불가정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엿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한불가정 15가구와 만남의 경로

 

1. 프랑스 유학 중 만남 – 4

2. 미국, 캐나다 등 다른 국가에서 유학 중 만남 - 2

3. 프랑스와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 여행 중 만남 -2 

4. 프랑스에서 길 혹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남 -2

5. 친구의 소개로 만남 - 2

6. 프랑스 또는 한국에서 직장 동료로 만남 2

7. 기타 - 1

※ 15가구 중 2가구는 이혼해 한국인 아내가 주중에 자녀를 돌보고 주말에는 남편이 돌보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은 자식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기 어려운 가족중심 사회지만 프랑스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혼의 가장 큰 사유가 될 만큼 문화적 차이가 있다. 

 

 

70%는 한국국적을 유지

 

재외동포로, 한불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들의 70%는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국적이다. 프랑스는 복수국적이 가능하지만 한국이 아직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아 대개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에서 국제결혼을 하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갖음에도 국적를 바꾸지 않는 이유로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다른 이유로는 앞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거나 살아야할 경우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65세 이상은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기에 허용 연령이 낮아지거나, 복수국적이 전체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국적을 바꾼 경우는 ‘프랑스 사회에 적극 동화되기 위하여’ ‘프랑스 남편과 결혼해 자녀까지 두었으니 프랑스 묘지에 잠들 것’ 이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 사는 이유는 첫 번째로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문제였다. 특히 교육문제를 들면서 한국의 치열한 경쟁과 입시제도 속에서 자녀들이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어 사회복지제도, 프랑스인 배우자의 직업, 노후 문제 등을 꼽았다.

 

이중 문화의 장단점을 조화롭게 이어가는 게 관건 

 

이중문화로 인한 갈등은 한국과 다른 육아법, 가정교육에서 많이 드러났다. 

아내가 신생아와 같이 잠을 자거나 부부의 침실에 아기를 재우는 것부터 식탁예절을 까다롭게 요구하는 자잘한 일상의 가정교육 차이, 개인주의가 강한 프랑스에서의 가족관계와 한국의 가족관계 등 문화차이로 인한 것이다. 반면 이런 개인주의가 배우자 가족들과의 관계에는 부담이 없다는 점을 좋은 점으로 꼽았다. 

한불가정을 이룬 배우자들은 서로의 문화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며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서로의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풀어내며 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한국인과 결혼한 많은 수의 배우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을 다니거나 다닌 적이 있었던 배우자가 6명이나 됐다. 독학으로 공부하거나 또는 배우자에게 배우는 경우도 있었다. 

생활면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들을 초대해 한국음식을 나눠 먹거나, 한국식당에서 자주 식사한다. 한국관련 페스티발이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문화 전파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한 가정은 배우자가 한국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불편함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생활을 10~20년을 한 한국 배우자는 예전에는 한국의 가족, 친구, 음식 등의 그리움으로 타국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식당과 한국식품점이 많아지고 가족. 친지들의 방문도 자주 있고, 비싼 국제전화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통화, 무료통화 등으로 소식 전하기가 편리해져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해 뉴스, 예능 방송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프랑스와 한국 항공편도 늘어나면서 언제든 한국에 다녀오기 쉬워진 상황도 고국에 대한 향수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또한 프랑스에서 한류 붐의 영향으로 한국관련 문화행사가 다양해지고, 한인들이나 한불가족이 늘어난 만큼 자주 왕래하고 한국의 정서를 나누며 만족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불가정의 자녀교육

 

한불가정 자녀들이 프랑스인이자 한국인으로, 혹은 프랑스인도 한국인도 아닌 특별한 삶을 살아야하기에 양쪽의 장점을 살려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이들 가정의 부모들은 태어나자마자 가정에서 이중문화를 접해야 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언어였다. 

대부분의 가정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또한 유치원 때부터 한글학교에 보낸 가정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번 다니는 한글학교에서의 한국어 공부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어서 대부분 수 년 간을 한글학교에 보내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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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는 최근 4년간 파리 한글학교의 학생 현황이다. 한불가정이 64~70%로 압도적으로 많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한불가정 자녀들의 한글공부에 대한 관심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한글학교에 다녔지만 다른 여가활동을 해야 하거나 중학교부터는 학교 공부 양이 많아져 한글 배우기를 멈춘 경우도 7가정이나 됐다. 

자녀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위기가 있었던 경우도 8가정이나 됐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한국어를 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시기로 이때 부모들과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아이들이 프랑스 사회와의 관계 형성을 시작하는 시기로 프랑스어로 공부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에 두 언어를 동시에 쓰는 것이 아이들에게 힘겹기도 하다.

아이에게 맞추어 프랑스어만 쓰기 시작하면 다시 한국어로 소통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것이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부모들은 일주일에 한 번의 한글학교 수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자녀와 한국말 하기,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보기, 노래듣기 등으로 한국어에 익숙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어휘력이나 표현력이 부족해 대화의 어려움이 올 때는 프랑스어 설명을 덧붙여야 했지만, 자녀들이 고등학교 때부터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면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한국어 실력이 늘어 대화가 쉬어진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에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중 문화, 이중 언어에 대한 거부감 대신,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류의 영향으로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며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 등을 찾아가며 공부한다는 자녀들도 많아졌다. 이와 함께 바칼로레아에 한국어 시험이 포함이 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불가정 부모들은 10여 년 전과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자녀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에서 더 빠르게 느끼고 있었다. 

 

파리한글학교에서는 한불가정 자녀들을 위해 한국어가 제2언어이기 때문에 모국어로서의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은 교육학적으로도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법 자체를 다르게 접근해야하기 때문에 초등부 부터 어학당 과정이 별도로 나뉘어 현재 4학급이 개설되어 있다. 

 

한불가정 아이들과 한국가정 아이들의 정체성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가정의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라도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불가정 자녀들은 가정 교육에 따라 자녀들이 느끼는 차이가 있고, 집에서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가정에 따라 또 차이가 있다. 

한불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고 자신을 한국인이라고는 여기지만 절감하지는 못한다. 차이는 조금씩 있을 지라도 대부분의 한불가정 자녀들은 프랑스인으로, 한국인으로 절반씩 느끼고 있지만 현재 살고 있는 프랑스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한국어와 한국어를 접하는 기회가 많을수록 확고해진다. 결국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중요한데,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프랑스에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녀들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가정체성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열린 사고가 높아졌다고 해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접근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내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 때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불가정 자녀들의 정체성은 미래의 큰 자산

 

해외동포가 750만 명에 이르는 시대가 되었다. 

법적으로 해외동포는 재외동포·재외국민·외국국적동포로 나뉜다. 지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본인 또는 조부모·부모의 한쪽이 한국 국적을 가졌던 사람은 모두 재외동포에 포함된다. 그중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으면 재외국민, 국적을 바꾼 경우에는 외국국적 동포라 칭한다. 

한불가정 자녀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살고 있더라도 한국법으로 복수국적이 허용되므로, 스스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재외국민에 포함된다. 자녀들이 한국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재외국민, 큰 범위에서 재외동포에 속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다양한 국가의 이민자들이 모여살기에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국제결혼이 흔해져 혼혈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별로 없다. 2000년대 이후 한류의 영향과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보다는 이중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여길 정도로 시대의 변화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한불가정 부모와 자녀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주며 민족주의, 애국주의에서 비롯되는 수 많은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적 공동체로 함께 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한불가정, 다문화 자녀들은 미래의 큰 자산임에 틀림없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조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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