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4)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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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첫날 유모차의 골격이 부러졌다. 미국횡단을 하고 곧 대한민국 일주를 하고 부산에서 광화문까지 달려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모차이지만 사실 임무를 마칠 때도 되었다. 임시방편으로 끈으로 묶어서 어제 일정을 끝마쳤는데 아침에 조임쇠로 묶어서 쓰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철물점 문 여는 시간에 마쳐서 가려고 아침에 좀 늦장을 부렸다. 그런데 9시에 문을 여는 가게가 9시 반이 되어도 문을 열지 않는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냥 시원치 않은 유모차를 밀며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예보되었지만 날씨는 쾌청하여 하늘은 맑고 뭉게구름 내 걸음 보다 천천히 흘러간다. ‘하우다’라고 읽기도 하고 ‘고우다’라고 읽기도 하는 ‘고우다(Gouda)는 우리에게 고우다 치즈로 잘 알려진 곳이다. 고우다에서 위트레흐트로 연결된 자전거 길은 유럽에서 가장 멋지고 기분 좋은 정원 속의 길이라고 한다. 이런 길을 달리는 것은 행운이다. 네덜란드의 풍차와 운하를 배경으로 한 가을색은 아무 때나 찾아오면 반갑게 맞는 헤픈 색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창은 크고 화려하다. 우중충하고 비 내리는 날이 많으니 실내에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들이기 위해서이다. 그 창문은 보통의 경우 활짝 열어젖혀져 있다. 열린 창속으로 그들이 삶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삶은 어느 곳에서도 비슷해서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칼뱅주의의 전통이 강해 남에게 숨길 것 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큰 창문 아래쪽에는 보통 선반이 달려있어 화분이나 장식품들을 올려놓아 창문을 화려하게 꾸몄다. 이들은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기분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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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운하를 따라 집을 짓고 살고, 운하를 따라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오고가면서 삶을 이어간다. 오래된 도시에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길을 물으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나는 단순히 오늘밤 묵을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상생의 길, 평화의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운하를 따라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데 벨기에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진을 이거저것 물어보더니 같이 찍자고 한다. 운하를 따라 가며 번하는 길은 여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예 한참을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주고 간다. 한스는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며 굳게 악수를 나눈다. 그와 헤어져서 이제 오늘의 목적지 위트레흐트에 다다랐는데 도시에서는 더욱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강가를 달리던 청년을 세워 길을 물었더니 자기하고 같이 뛰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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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는 토마스와 함께 도심 한복판을 기분 좋게 한동안 달리다가 숙소까지 안내해주었다. 나는 맥주라도 한잔하자니 집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려 아쉽지만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유스호스텔 방문을 여니 여학생 하나, 남학생 하나가 있다. 남녀가 같은 방을 쓴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지만 그러려니 하니 별 일도 아니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다시 레이넨을 향해서 달려간다. 네덜란드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이를 만나기 힘들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보여주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세계화와 자연을 그대로 잘 보존하면서고 발전하는 모습이 내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이다. 사회주의적인 복지시스템과 자본주의적인 경제 논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다는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노동자들이 살기도 좋으면서 기업가들이 기업하기도 좋은 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이다.

 

네덜란드의 국운이 상승을 할 때 범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던 두 네덜란드인이 1653년 조선 효종 때 제주도에서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되었다. 바로 20여 년 전 이미 조선에 귀화해 살고 있던 박연(벨테브레이)과 얼마 전 난파된 배에서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닿은 하멜 일행이었다. 이역만리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박연과 하멜은 옷깃을 적실 때까지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처음 이들이 만났을 때 박연은 오랜 타향살이 끝에 고국어를 다 잊어버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박연은 조선에 화포제작법을 가르쳐주고 무과에도 급제를 하며 잘 적응해 살았지만 하멜일행은 달랐다. 그들은 청나라 사신들을 만났을 때 “돌아가게 해달라!‘고 시위도 벌였다. 이 일은 북벌을 은밀하게 계획하던 효종 임금의 야심이 들통 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그들은 7년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했다. 하멜은 조국에 돌아가 13년간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13년간의 생활을 낱낱이 기록한 보고서를 쓰게 된다. 하멜 표류기는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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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동점을 청산할 시기에 내가 극서의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극동의 한국으로 달려가는 일은 상징적이다. 유럽은 이제 어떻게 아시아와 다시 만나 평화로운 세상을 열어갈까? 언제나 봄이 오기 전에 이미 땅 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전해져온다. 나는 그 기운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면서 평화의 전령사 역할을 하려한다. 세기를 흔드는 봄바람 같은 평화의 기운!

 

한때 몽골인들은 사막을 말을 타고 건너 세계를 제패하고 한 때 네덜란드인들은 배를 타고 물의 사막을 건너 세계를 제패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인 하나가 두 다리로 평화의 사막을 건너며 제국주의적 사고의 종말을 외치며 달려가고 있다. 21세기 지구촌은 힘을 모아 상극분쟁(相剋紛爭)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합상생(和合相生)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시대적 소명을 지녔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이 그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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