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53)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19030394_1505468172884785_3874060525699130365_n.jpg

 

 

코카서스 산맥의 두꺼운 산 주름 속을 맨몸으로 달릴 때 낯선 나그네의 발길이 탐탁지 않은 듯 바람은 거셌다. 그러지 않아도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자태(姿態) 앞에 무릎이 절로 꺾이고 고개가 숙여지는데 내 작고 가녀린 몸은 코카서스의 바람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만 이 대지 위에서 고개를 숙인 것이 아니다. 산자락의 풀들도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고 그 풀을 뜯는 소와 말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1월의 길은 어디를 가도 황량하겠지만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트빌리시로 가는 이 길은 세상을 등지고 구도의 길을 떠나는 구도자의 길처럼 황량하다. 바람기 많은 내 마음은 그루지야 국경을 넘기 전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코카서스를 보는 순간 바람이 들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는데 그 심연 깊숙이 들어갈수록 들려오는 대자연의 거친 숨소리에 내 숨소리가 멎을 만큼 정신이 몽롱해졌다.

 

 

26903796_1505468326218103_7756823398977449505_n.jpg

 

 

길은 리오나 강 하류에서 시작했고 저 멀리 보이는 설산까지 그 물길을 따라 길이 나 있다. 물은 스스로 나아갈 길을 만들었다. 강물은 흐르고 인간의 길은 강물을 따라 뻗어있었다. 그저 낮은 곳을 향하여 합리적으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옛날 길들은 물길을 따라 생겨났고 물길 그 자체가 지금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길이 비단길이요, 문명이 오고가던 길이다. 나는 그 비단길 위에 나의 영롱한 땀방울을 흘리며 평화의 수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놓아가며 달리고 있다.

 

이 산맥만 넘으면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이 펼쳐질 것이다. 거기서 동물과 새들은 물길을 따라 이동하였고 사람들은 동물을 따라 이동하였다. 우기가 되면 풀이 돋아나고 동물들은 그 풀이 돋아나는 길을 따라 수백에서 수천 킬로를 이동하였고 사람들은 동물을 따라 이동하였다. 그 길을 따라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비단도 흐르고 사랑도 흐르고 문명도 흘렀다. 그 길 옆에는 들판도 형성되어서 인간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26903969_1505468262884776_721430505239272135_n.jpg

 

 

흑해의 해안 길을 벗어나서는 숙소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 철지난 바닷가에는 그래도 가끔 찾는 손님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내륙의 호텔은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샘트레시아에서 어렵사리 찾은 호스텔은 침대는 여섯 개가 놓여있지만 대학생들 MT가면 40명도 더 잘 수 있는 넓은 방이었다. 그 넓은 방에 달랑 전기스토브 하나 놓여있었다. 주인 아주머니한테 추우니 전기스토브 하나 더 갖다 달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10리라를 더 준다고 하니 마지못해 하나 더 가져왔다.

 

셋이 자는 침대 한가운데 전기스토브 두 개를 놓으니 추위는 가시는 듯 했다. 박호진씨는 저녁식사 후에 바로 잠들어버리고 송교수님은 12시까지 현지 신문사와 정부관청에 평화마라톤 홍보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사단이 일어난 것은 한 2시쯤 되어서였던 것 같다. 방안에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나니 나와 박호진씨는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전기가 누전(漏電)되어 불이 타고 있었다. 짧은 순간 당황했지만 수건으로 화재를 진압했다. 방 안에는 순식간에 전선이 탄 냄새가 자욱했다. 창문을 열고 연기를 빼야했지만 추위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하는 걱정에 선뜻 문을 못 열고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송교수님은 그 매운 연기 속에서도 샘나도록 꿀잠을 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워 피로가 가시지 않았지만 다시 기지개를 펴고 달리기 시작하니 몸이 가뿐했다. 아침 기온은 쌀쌀하다. 강 위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내 입에서도 용의 입에서 구름이 뿜어져 나오듯 안개가 새어나온다. 뽀얀 안개너울이 승무(僧舞)를 추듯 춤을 춘다. 강 건너 마을에서 아침안개를 타고 들려오는 소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산과 강에 메아리쳐 울려오는 새 목청 고르는 소리도 경쾌하고 달아오르기 시작한 내 몸, 내 발자국 소리도 경쾌하다. 내 마음은 더할 수 없이 평화롭다.

 

잠을 설치고도 다음날 쿠타이시까지 42km를 잘 달렸다. 이날은 다행히 달리기를 마치고 금방 공원 안에 있는 호텔을 금방 찾았다. 데스크에는 여대생이 앉아있었는데 호텔 주방을 빌려서 있는 김치와 햄, 돼지고기에 라면사리까지 넣고 부대찌개를 끊였다. 이 아가씨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니 아마 교대시간이 되어서 편했던지 자리에 앉더니 밥에다 송교수님 하는 걸 보고는 부대찌개를 말아서 맛있다며 한 그릇 뚝딱 비운다. 그루지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 좋다는 그루지야 와인까지 반주를 하니 코카서스의 밤은 아름다웠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보르조미 광천수와 와인은 꼭 권하고 싶다.

 

 

1516113608300.jpg

 

 

저 언덕의 침엽수 가지의 떨림 사이로 코카서스의 설경이 한눈에 보인다. 순간 나의 가슴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코카서스가 내게 준 선물은 경외로운 떨림이었다. 떨리는 눈길 넘어 보이는 설산의 떨림이 지금껏 내가보지 못한 신비한 떨림이 되어서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먼 옛날 해수욕장에서 흘깃흘깃 나를 보는 그 여학생의 눈 떨림 같은 것이었다. 그때도 나의 가슴은 멈춰버렸었다. 지금 이름도 얼굴조차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가끔씩 전해져 온다. 사실 청춘의 그 떨림은 평생을 우려먹는 곰탕과 같은 것이다. 삶이 허기질 때마다 우려먹을 곰탕 같은 추억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세세토록 우려먹을 곰탕 같은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그 곰탕을 끊이는 군불 때기 같은 것이다. 곰탕은 오래오래 고아야 제 맛을 내기 때문에 내 발걸음의 길이가 1만6천km가 되었고, 14개월을 고아서라도 꼭 진한 국물을 우려내고 싶었다. 누구라도 삶이 허기질 때 한 그릇 간단하게 먹고 배를 채울 수 있는 곰탕 같은 평화!

 

 

1516113909757.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 |
  1. 19030394_1505468172884785_3874060525699130365_n.jpg (File Size:145.1KB/Download:8)
  2. 26903796_1505468326218103_7756823398977449505_n.jpg (File Size:56.3KB/Download:7)
  3. 26903969_1505468262884776_721430505239272135_n.jpg (File Size:76.8KB/Download:7)
  4. 1516113608300.jpg (File Size:72.3KB/Download:7)
  5. 1516113909757.jpg (File Size:90.8KB/Download:7)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나는 用美主義者다’ file

    文정부는 ‘권리장전’으로 美를 대하라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커네티컷 주립대학교(UConn, University of Connecticut)가 지난달 23일 트위터를 통해, “커네티컷 주립대학은 평화적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인해 받은 처벌이 입학허가를 받았거나 지원 중인 ...

    ‘나는 用美主義者다’
  • 커져라, 유권자 파워!

      커져라, 유권자 파워! - 유권자 수가 힘이다   [i뉴스넷] 최윤주 기자 editor@inewsnet.net   1865년 6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했다. 이로써 미 전역의 노예가 해방됐다. 그러나 그 후 100년이 흐르도록 흑인들은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으...

    커져라, 유권자 파워!
  • 평창의 열정, 패럴림픽 성공으로 완성하자!

    평창의 열정, 패럴림픽 성공으로 완성하자! - 민주평통 달라스 협의회가 평창 패럴림픽을 응원합니다     ​오원성 · 제18기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부회장     올림픽과 패럴림픽, 그리고 스페셜올림픽을 일컬어 세계 3대 올림픽이라 한다. ‘스페셜올림픽’은 자폐나 발달...

    평창의 열정, 패럴림픽 성공으로 완성하자!
  • 뉴욕의 옐로캡 운전대를 놓으며 file

    나는 왜 택시운전을 그만두었나 지역사회를 가난하게 만드는 우버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지난 21일, 4년 반을 잡았던 택시 운전대를 놓았다. 자의반 타의반(自意半 他意半)이다. 자의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자 함이고 타의라는 것은 더 ...

    뉴욕의 옐로캡 운전대를 놓으며
  • 비단길에 평화의 수를 놓다 file

    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53)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코카서스 산맥의 두꺼운 산 주름 속을 맨몸으로 달릴 때 낯선 나그네의 발길이 탐탁지 않은 듯 바람은 거셌다. 그러지 않아도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자태(姿態) 앞에 무릎이 절로 꺾이고 ...

    비단길에 평화의 수를 놓다
  •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 file

    별나라형제들 이야기(28)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8.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이고 많은 비행체들이 가고 오고 있다   지구에는 수백, 수천의 외계인 전초기지(前哨基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구 곳곳에는 적어도 75개 비행체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지구는 UFO 종합터미널
  • NZ 여성들 “자녀 적게, 늦게 갖는다”

    뉴질랜드 여성들이 평생 동안 출산하는 자녀의 수가  이전에 비해 크게 줄면서 출산 나이 자체도 늦어지고 있다.      지난 2월 하순 발표된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이른바 ‘합계출산률(total fertility rate)’이 작년에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 조금 더 해주는 정성, 성업 부른다

    대폭적 경영쇄신에 앞서 봉사의 질을 향상시켜야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텍사스 주의 댈라스에 있는 한 호텔에 새로운 매니저가 부임해 왔습니다. 여성인 매니저는 그 침체된 그 호텔을 성업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청을 소유...

    조금 더 해주는 정성, 성업 부른다
  •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4)

    [교육칼럼] '존중'은 자신과 타인이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행동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교육 칼럼니스트) =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하고 많이 쓰이는 말들도 자주 변하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별로 사용하거나 듣지 않았지만 요새 흔하게 쓰이는 말들 중에...

    자녀에게 좋은 성품 길러주자(4)
  • 햇볕 쬐면 비타민 D 얻는다 file

    [생활칼럼] 피부암 등 자외선 유해성 감안해 노출시간 조절 필요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비타민 D는 음식을 통해서도 얻어지지만 신체내 필요한 분량중 상당 부분이 햇볕에 노출된 피부에서 만들어진다. 비타민 D의 남녀성인 하루 권장량은 400 IU이며, ...

    햇볕 쬐면 비타민 D 얻는다
  • 오래전 솔직하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 file

    [이민생활이야기] <조선일보>에 난 북한 어부들 기사를 읽고 지난해 말에 읽은 <조선일보> 기사 한 토막이 요즈음 며칠동안 나의 잠을 설치게 한다. <조선일보> 일본 특파원이 쓴 '일본 해안의 뚜껑 없는 목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오래 전에 내가 솔직하게 한 말과 ...

    오래전 솔직하게 했던 말을 후회한다
  • 검은 보석같은 친구‘릴리앙’

    여름이 저만치 물러나면서 손짓해 불러들인 다음 손님. 가을이 왔다. 따가운 햇살속으로 안겨오는 바람이 제법 상큼하다.    이 때 쯤일게다. 다알리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 다알리아 꽃을 생각하면 문득 잊고 살았던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탐스럽게 검...

    검은 보석같은 친구‘릴리앙’
  • 보길도와 바구리섬..정겨운 우리말 file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2)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열번째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트럭 운전사는 보길대교를 지나 면사무소 앞에 내려주었다. 식당 앞에서 노인이 젊은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보길도' 지명은 15세기 ‘동국여지승...

    보길도와 바구리섬..정겨운 우리말
  •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하자 file

    지구인은 탐구족(The explorer race) 별나라 형제들 이야기(27)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로버트 샤피로(Robert Shaprio)가 쓴 ‘탐구족(The explorer race)’ 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주 기상천외하고 도발적인 관점들이 많아서 정말 흥미진진했다. 다시 말하...

    환상적인 우주여행을 하자
  • 북미 대화,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

    [시류청론] 대북적대정책 포기만이 평화의 첫걸음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평창올림픽이 시작된 2월 10일 북한 대표단과 펜스 등 미국 대표단이 청와대에서 ‘조건 없는’ 비공개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회담 시작 2시간 전에 북한 측이 회담을 일방적...

    북미 대화,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
  • 21세기 문명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문명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휴머니즘을 발견해야……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조국이 신음하고 있을 때 일본은 그 말기적 증상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바로 그날 세상에 태어났다. ...

    21세기 문명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려면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최근에 읽은 김동문님의 글 '혐오가 복음이고 정답이다?'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에 깔려있는 정치적으로 극우적 편향은 보수 정권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무비판적 지지로 기울곤 한다. 정치...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려면
  • 그리스, 로마신화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었을 때 기적(奇蹟)이라고 하고 그 스토리를 신화(神話)라고 부른다. 신화(神話)는 우리에게 꿈을 주고 역사를 심어주는 중요한 매체이다.    신화학자인 웬디 도니거 시카고대 교수는 신화는 현미경 기능과 망원경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그리스, 로마신화
  • NBC의 이상한 ‘평챙’ 고집 file

    ‘평창’ 대신 엉터리 발음 고수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미국인들에게 이번 동계올림픽은 ‘평창’이 아니라 ‘평챙’입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가 초지일관(初志一貫) ‘평창’을 ‘평챙’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지요.   올림픽 개최도시 평창(Pyeong Chang)은 ...

    NBC의 이상한 ‘평챙’ 고집
  •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1) file

    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완도로 향하는 배 옆자리에 앉은 예비군복 차림의 중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쪽 어깨에 파란 지휘관 견장이 있었다. 청산면 예비군 중대장인데 청산도와 인근 여러 섬의 예비군훈련을 맡고 있다고 한다. 회...

    부자들의 섬 노화도, 선비의 섬 보길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