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오리엔테이션 사흘째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031118.jpg

 

 

생각지도 못한 암초(暗礁)를 만나 쫓겨날 뻔 했다.

 

원래는 오전에 메디컬 카드를 가지고 DMV에 가서 미주리 면허증과 퍼밋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닥터 오피스로 가보라는 것이다. 갔더니 나보고 집으로 가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인가. 2016년에 난 택시 사고로 Workers Compensation에 보상 청구가 진행 중인데, 다니던 병원에서 팩스로 보낸 닥터 리포트에 내가 disabled로 의사 소견이 기록돼 있어 고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으로 가서 이 부분을 해결하고 케이스를 클로즈한 다음에 오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날짜를 보니 1월 9일자 검진 기록이다. 2월 27일자 검진에서는 의사가 괜찮다고 했다. 사정을 얘기하고 새로 리포트를 보내겠다고 했다.

 

염카이로 통증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Dr. Hannanian이 아직 새로운 리포트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외부에서 오는 정형외과 전문의다. 긴급 상황이니 최대한 빨리 처리 해달라고 요청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병원장에게도 메신저로 상황을 설명하고 신경을 좀 써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리포트를 받았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 다행이다. 죽다 살아났다. 회사 쪽 팩스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닥터 오피스에 갔더니 이미 퇴근했다. 메디컬 카드를 받을 수 있을 지 내일 아침까지 또 기다려봐야 한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아직 퍼밋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실습생들은 공부하랴 시험치랴 CBT하랴 분주하다. 나는 밤 9시에 시작하는 시뮬레이터 클래스 외에는 따로 할 일이 없다. 차라도 있으면 예전에 지냈던 Seymore라도 가볼텐데. 털보 강사가 준 프리 트립 대본이나 외워야겠다.

 

**************

 

어제 11시에 잠들었는데 새벽 5시가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침 식사 후 오전 7시에 시작하는 운행전 점검 수업 (Pre-trip inspection class)에 참가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이라 꼭 해야한다. 그래서 실기시험의 일부로 들어있다. 서부영화에 악당역으로 나올 법한 외모의 털보 강사가 나왔다. 그는 지금까지 YouTube에서 본 강의들은 다 잊으라고 했다. 미주리주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기 시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Pre-trip inspection이라고들 한다. 외울 것이 엄청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집에 있을 때부터 유투브에서 강의를 찾아서 공부했었다.

 

털보강사는 10페이지 짜리 인쇄물을 주며 거기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더도덜도 말고 대본처럼 그대로 외우라고 했다. 다른 쓸데 없는 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올해 1월자로 개정된 최신법령에 맞춘 것이란다. 그럼 나는 이제 트럭커 역할을 맡은 배우가 되는 것인가. 약 2주간의 시간이 있으니 외우자. 그리고 트럭에 대해 공부하자.


******************

 

황키호테의 모험은 여기서 끝인가?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할 일도 없고 호텔에만 종일 있을 이유도 없어 셔틀 버스를 타고 프라임 본사로 찾아 갔다. 의무실에 가서 새로운 서류가 왔으니 처리해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굳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새로 받은 소견서도 마음에 좀 걸렸다. 현업으로 복귀해도 된다고 적혀 있었지만 다른 항목에는 몇몇 부위에 여전히 통증이 있고 정기적인 치료 및 진료를 필요로 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프라임 본사는 건물은 크지 않지만 부지가 엄청 넓었다. 트렉터와 트레일러가 잔뜩 있었다. 회사 카드가 없으면 본사에 들어갈 수도 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들어갈 때 따라 들어갔다. 의무실에 도착하니 내 서류는 이미 팩스로 와 있었다. 의사와 간호원이 검토를 한 후에 내가 염려했던 그 부분 때문에 메디컬 카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메디컬 카드 없이는 DMV에서 퍼밋을 받을 수 없다. 그 뜻은 내가 여기 취직을 할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애원했다. 다른 방법은 없단다. 대게의 미국 사람들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원리원칙을 고수한다. 그걸 알기에 더 애걸하지 않았다. 불편해도 그게 옳은 것이니까.

 

몹시 실망하는 나에게 간호원은 위로의 말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는 당신을 뽑고 싶다며. 나는 모집 담당자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 역시 괜찮다며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내일 아침 7시 35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해주겠다며. 자신이 표를 예매해서 연락을 하면 오리엔테이션 사무실로 가서 서류에 사인하고 확인 코드를 받으라 했다. 그런데 사무실 문 닫을 시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리쿠르터는 유타 주에 있어 이곳 미주리 주 보다 1시간 느리다. 나는 그에게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켰다. 5시가 되니 사무실 사람들은 퇴근했다. 리쿠르터는 회사 그레이하운드 어카운트에 뭔가 문제가 생겨 표가 예매가 되지 않는데 당장 처리를 할 수 없으니 내일 다시 시도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이런 문제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아내는 일이 술술 풀린다고 좋은 것도,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새옹지마식의 말을 했다. 다만 집세가 걱정이라고.

 

힘들게 왔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2년전 난 교통사고가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을 줄이야.

35시간을 왔는데 다시 35시간을 갔다가 35시간을 와야 한다. 도합 70시간. 그레이하운드 의자가 얼마나 엉덩이가 아픈지 모른다. 고문이 따로 없다. 생각 같아서는 내 돈을 들여서라도 비행기를 타고 오가고 싶었다.

 

그래 이번에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갈 때 가더라도 수업은 빠지지 말자.

 

시뮬레이터 수업에 들어갔지만 우리 조 담당 강사가 나를 부른다. 사무실에서 얘기 못 들었냐고. 내일 집으로 간다고 했다. 수업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방으로 돌아왔다. 이 부분은 속상하다. 내일 아침 수업도 참석할 필요가 없겠지. 루저가 된 기분이다.

 

아마 이런 일이 없이 지나갔다면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수련생들을 보고 뭔가 약물 경력을 숨겼거나, 건강 장애가 있거나, 교육을 이수할 실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겠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 |
  1. 031118.jpg (File Size:56.7KB/Download:17)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 매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file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잊지 말자고 커네티컷 주립대학 비지팅 센터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Rock Painting 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금년 2018년, 세월호 참사 4 주기에는 눈비가 왔습니다. 바위가 젖어 페인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

    매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 공감 file

    [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남편이 5년 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에게 딸 둘과 막내인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집사님은 호프집을 운영하여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공감
  • 악한사람의 소득엔 걱정이 따른다 file

    사순절 이야기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잠언 15:6 <바른 사람의 집안에는 재물이 쌓이고, 악한 사람의 소득에는 걱정이 따른다.>   고백하건데 어려서 도둑질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저학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동네 가게...

    악한사람의 소득엔 걱정이 따른다
  • 청천벽력..일할수 없다구요? file

    프라임 오리엔테이션 사흘째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생각지도 못한 암초(暗礁)를 만나 쫓겨날 뻔 했다.   원래는 오전에 메디컬 카드를 가지고 DMV에 가서 미주리 면허증과 퍼밋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닥터 오피스로 가보라는 것이다. 갔더니 나보고 집으...

    청천벽력..일할수 없다구요?
  • 미국 기업 12%, 비밀고객제도 실시

    호텔, 소매점, 식당, 항공회사, 은행 등이 주로 이용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 교수) = 최근에 저는 패스트 푸드 사업체를 세 개나 소유하고 경영하는 업주로부터 흔히 듣는 고충을 들었습니다. 히스페닉계 종업원을 채용하여 영업을 하는 ...

    미국 기업 12%, 비밀고객제도 실시
  • 전공선택과 직업(2) - 수의학과

    [교육칼럼] 학부 졸업 후 4년제 수의학 학교 마쳐야 (워싱턴=코리아위클리) 엔젤라 김 = 미국에서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미국에는 미국 수의학 협회(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에서 인가한 수의과 대학교가 30개가 있다. 수의과 ...

    전공선택과 직업(2) - 수의학과
  • 트럼프 세법 개정 이후의 유산세와 증여세 file

    【세법 상담】트럼프 세법 개정 이후의 유산세와 증여세 유산세 및 상속세 없는 플로리다, 연방 유산세는 납부해야 (올랜도=코리아위클리) = 위일선 변호사(본보 법률자문) = 지난 해 말 의회를 통과해 올 1월 1일에 발효된 "감세 및 일자리 특별법" (이하 "특별법") 은 ...

    트럼프 세법 개정 이후의 유산세와 증여세
  • 바삭바삭한 음식, 트랜스 지방 있나?

    [건강칼럼] 고소함으로 음식맛 내지만 건강엔 악영향   ▲ 연방식품의약국(FDA)이 소개한 트랜스지방 다량 함유 식품들. 피자, 팝콘, 마가린, 초콜렛칩 쿠키, 케이크, 파이 크러스트, 아침 식사용 비스켓빵, 케이크 크림 등이 포함됐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

    바삭바삭한 음식, 트랜스 지방 있나?
  • 진실됨

    제목부터가 영 컬럼의 성격과 맞지 않는듯 합니다.    ‘진실됨’이라니… 마치 자신과 타인의 양심을 고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자고 말하는 도덕적 교훈 같기도 하고 살아 생전에 착한일 많이해서 내세를 준비하라 권하는 어느 종교의 슬로건 같기도 합니다. 하...

    진실됨
  • 러시아 신무기로 사면초가에 빠진 미국

    [시류청론] 러 구식미사일, 미군 미사일 절반 이상 요격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지난 3월 1일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한 차세대 신무기들 때문에 ‘세계유일패권국가’ 미국의 자존심이 크게 상처 받은 날이다. 푸틴이 이날 공개한 차세대 신무기들...

    러시아 신무기로 사면초가에 빠진 미국
  • 좁쌀 한 알

    [종교칼럼] 장일순 선생의 삶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 원주에는 협동조합이 많이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다른 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을 도울 정도로 원주는 협동조합이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입니다. 그 한 복판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있습니...

    좁쌀 한 알
  • 로마제국의 황제와 한국의 대통령

    로마제국의 황제들 잔혹사를 떠올리며  청와대 주인들의 잔혹사와 대비해본다.  일제의 잔존으로 내려온 청와대 터를 옮겨……      지구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고대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되었고 유럽의 대부분과 아프리카 북단, 잉글랜드, 소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히...

    로마제국의 황제와 한국의 대통령
  •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 2편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연가’라는 노래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연가’가 뉴질랜드의 구전민요라는 것, 더 나아가 그 민요 안의 옛이야기까지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옛이야기 ‘히네모아(Hinemoa)와 투타...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 2편
  • Art is

      뉴욕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메트로폴리스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약 330만 점에 이르는 소장품은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거의 대부분의 소장품은 개인 수집가들이 기증한 것이고 일부는 미술관에서 직접 구입한 것이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

    Art is
  • 투명인간

    초등학교 때였나. 그때 한동안 투명인간에 열광했다. 많은 사람이 만화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봤을 그 투명인간 말이다. 기억 속의 투명인간은 거의 슈퍼 히로에 가깝다. 조국을 위해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자다.     내가 그려왔던 투명인간은 드라마 속...

    투명인간
  • 세상은 시끄러워야 합니다 file

    사순절 이야기- 스물세 번째 편지     잠언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황소의 힘을 빌려야 소출이 많아진다.>   아이들은 스쿨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지저분하게 흘립니다.   스쿨 버스 안에서 뿐 만이 아니라 아이들은 어디서든 늘 가만있지 못하...

    세상은 시끄러워야 합니다
  • 화려한 아방궁 ‘봉하마을‘ file

    시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모인곳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일요일 새벽 뉴스를 확인하니 여전히 남해안 뱃길이 막혔다는 보도다. 남은 일정상 더 이상 섬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부산 서부터미널 부근에서 숙박한 나는 남은 닷새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

    화려한 아방궁 ‘봉하마을‘
  • 지구를 돕는 악투리안 file

    별나라형제들이야기(33)     Newsroh=박종택 칼럼니스트     악투리안의 교육내용과 과정은 어떠한가?   다음으로 저자가 집중적으로 질문했던 부분은 교육이었다. 지구인과 악투리안의 교육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구인은 타인과 경쟁을 하지만 그들은 경쟁이 없...

    지구를 돕는 악투리안
  • 내 인생 5년 후

    ‘내 인생 5년 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집중에 집중을 더해 딱 5년만 투자해라..라는 주제의 책은 5년을 투자해 인류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몇몇 사례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사실 상당히 단순합니다. 5년 동안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

    내 인생 5년 후
  •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이민자도 행복하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2012년부터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지난달 발표된 ‘2018 세계행복보고서’는 특히 세계가 직면한 난민과 이민 문제를 반영, 이민자들의 행복지수를 처음으로 산출해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이민자...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이민자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