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시절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한 한인(고려인)들의 비극을 러시아 일간지가 조명해 관심을 끈다. 러시아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의 니넬 구세바와 올가 돈스카야 기자가 취재한 ‘이주 한인들의 무덤이 된 사할린’에선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인들의 잔혹한 광기와 해방후 소련에서도 외면된 고려인들의 구슬픈 삶을 소개했다. <편집자 주>

 

 

2차대전은 수백만 명의 운명을 파괴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중에 일본인들에게 쫓겨 강제로 사할린에 이주 당하고 결과적으로 소련에 귀속된 땅에 살아온 고려인 이씨의 인생도 그 중의 하나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인 사할린의 역사에는 어려운 시절들이 많았다. 2차 대전 중 사할린 섬은 절반은 소련에, 나머지 절반은 일본에 속해 있었고 아무런 죄 없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집과 무덤이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다”

 

1910-1945년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몇몇 지방에서 일본인들은 일부러 현지인들이 살기 힘든 조건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로 괴롭히고 식료품 가격을 인상하는 등 여러 못된 짓을 일삼았다. 또한 적극적으로 사할린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고, 거절하는 사람들은 不逞鮮人(불령선인)으로 낙인찍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사할린 섬에 약 4만 명의 한국인들을 몰아넣었다.

 

그 중에 젊은 이씨 가족도 있었다. 이갑석과 이순이는 1940년 한국 경상남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2세였고 신부는 17세로 매우 젊었다. 그러나 모국에서의 행복한 신혼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혼한 지 두세 달 후 이들은 사할린에 강제 이주 당했다.

 

노예와 다름없는 조건 속에서 수천 명의 이주 한국인들이 사할린에서 최후로 永眠(영면)했다. 노동에 내어 몰린 사람들의 손으로 숲이 베어지고 철도가 놓여졌다. 이 철도에 대해서 전하는 말로 채찍과 饑餓(기아)로 여기서 죽은 노동자의 수가 그들이 깔아놓은 침목 수보다도 더 많다고 했다.

 

1945년에 와서 패전이 확실해지자 일본인들은 狂氣(광기)에 가까운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로 인해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소련군이 이미 가까이 진격해 온 것을 알고 일본인들은 더욱 발악을 했다. 한국인들을 위협하고 러시아인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지어냈다. 러시아 군인들은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따지지 않고 모두 죽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손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고 숲속으로 숨었다. 어머니는 이후 평생 흉터자국을 가지고 살았다. 서두르다가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소련 군인들이 도망자들을 찾아냈을 때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해서 울었다. 모든 고생이 다 지나간 것이었다. 일부 일본인들은 도망가면서 얼마나 서둘렀던지 심지어 자기 자녀를 놓아두고 가버렸다. 한국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죽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그들을 거두었고 자기 자녀처럼 키웠다”고 이정수 씨는 한숨지으며 말했다.

 

 

“사랑하나, 안하나” 누구도 묻지 않았다

 

소련군이 진군하면서 고국으로 귀환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사할린에서 보낸 세월 동안 이씨 부부에게는 자녀들이 생겼고 그들은 여기 남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잘 살았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화목했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수년 동안 이씨 가족 중 누구도 소련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사할린이 폐쇄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뭍에 나갈 수도 없고 누군가를 이곳으로 초청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어 모든 가족이 소련 여권을 받게 되었다.

 

이정수씨는 가족 중 첫딸이었다. 21세에 이웃 에수토로시(현 우글레고르스크) 청년에게 시집가는데 동의했다. 청년은 이정대로, 그의 부모도 전쟁 중 노동에 모집되어 왔다. 1970년 그들은 소박한 결혼식을 치렀다.

 

 

가족이 있는 곳이 고향

 

전쟁 직후 적십자가 이씨 가족에게 한국에 있는 친척들을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정대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남아있지 않아, 그나 그의 친지 모두 모국에서 서로 살아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다. 친척들과의 관계는 소련이 개방되기 오래 전에 이미 잃어버렸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자기 친척들을 미처 다시 만나지 못했다. 다수의 한국인 이주민들도 그와 같은 사정을 안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주민 자녀들에게 고국에 귀국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일본인들이 그들을 위해 한국에 집을 짓고 귀국 교통비를 부담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일정한 액수의 사회 보장금과 의료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러시아에 남기로 했다.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정수씨는 “여기 러시아에 내 가족이 살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 있는 곳이 내 고향이고 모국이다”라고 簡單明瞭(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글 = 니넬 구세바 기자, 올가 돈스카야 기자 |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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