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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몰두중인 민정연 작가 / photographié par David Aymon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79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고아원을 운영하신 아버지와 서예를 하시는 어머니 아래에서 고아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남들과는 좀 다른 엄청나게 많은 형제 자매가 있었던 셈이죠.

광주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7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프랑스엔 언제, 어떤 계기로 오셨나요? 

 

대학을 다닐 때 한국이란 곳의 사회전반의 사고체계가 답답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이 아닌 다른사회를 경험하며 암묵적인 사회의 고립된 사고에서 벗어나 방랑자같은 이방인으로 살고싶어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별히 프랑스를 선택한건 파리라는 도시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동시성이 가장 두드러진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제가 속해있는 공간의 시간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간의 역사가 빈곤하면 그만큼 그 공간에 확장된 표현 형태인 문화가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부재한 장소엔 창작의 기본 재료인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질 수 없겠죠. 게다가 프랑스는 유럽의 통로역할을 했던터라 인종의 뒤엉킴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두드러지죠. 그만큼 다양성을 품고 있는 나라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프랑스에 오게 됐습니다.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나요?

 

제3의 섹스, 동성애, 20년 전 한국을 떠나올 당시의 시대분위기는 이런 주제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였어요. 지금은 좀 완화된 느낌이지만.

프랑스인들이 인식하는 동성애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자연스롭고 그 주체자도 다양성의 일부라고 받아들여져 금기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프랑스에 막 도착했던 저로서는 처음으로 느낀 문화적 사고의 충격이었습니다.

 

도불 초기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는 현대미술이 아닌 복원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티스트의 꿈을 접고 복원미술학교에 입학하려 불어공부만 1년정도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저를 지켜보던 친구가 저에게 이런말을 했어요. "넌 무의식적으로 계속 낙서를 하는데 , 난 그게 멋진 작품처럼 느껴진다. 니가 왜 복원미술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것에 정말 관심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읽어본 책이 있나?"

제 대답은 없었어요. 1년동안 불어공부만 집중했지 정작 제가 하려고하는 공부분야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거죠. 방향을 잃어버린 제가 친구의 권유로 파리보자르 편입시험을 보게되었는데 합격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오랜시간이 지나 그때를 되돌아보면 제 자리를 찾아갈수 있도록 저에게 그런 질문을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프랑스에서 체재하는 동안 가장 좋았거나 혹은 아쉬운 부분이라면 추천하는 본인만의 핫프레이스가 있다면.

 

8년 전부터 파리에서 이주해서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인 툴롱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아주 좋아합니다. 우선 툴롱엔 사이프러스 나무가 정말 많고 파라솔 소나무라 불리는 멋진 소나무가 자생하는 곳입니다. 지중해 답게 해안선을 따라, 작고 아기자기한, 관광객이 잘 모르는 숨어 있는 해변이 아름답습니다. 단지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 뻘이 없는 모래사장이라 바다냄새가 없어서 아쉬워요. 수영을 하기엔 최고의 조건이죠. 잔잔하고 거대한 수영장 같거든요. 지중해와 여름바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겨울에 툴롱의 야자나무 가로수 크리스마스 트리는 라스베가스를 연상케하는 유치하지만 낮설은 매력이 있어요.

 

프랑스에 사는 나만의 소소한 행복이라면...

 

전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게 좋습니다.

나의 모든 일상의 행동과 말들이 그냥 이방인이 가진 다양성의 일부라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속해있는 사회의 정치적 요소에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무거운 부담도 없고, 어떤 특정된 사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편견이 섞여있는 평가를 받지 않아 정신과 행동이 여유로운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의 삶이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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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mm (respiration), 2022 / photographié par Thierry Estrade

 

이번 전시회의 주제와 출품작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1월 29일부터 3월 11일까지 문화원 1층 공간에서 "désert plein - soif, sommeil, silence (갈증, 졸음, 고요로 가득찬 사막)" 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막은 아무것도 없고 삭막한 곳인데, 저의 사막은 새로운 곳으로 가기위한 열망이 가득찬 곳입니다. 기존 가치의 진부함이나 쓸데없이 덧붙여진 관습의 군더더기를 비워내고 다시 저 고요하고 광활한 사막에 들어서 과장되지 않은 날것의  나를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에겐 잔잔한 대서양의 물위도,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도, 텅빈 우주 공간도, 기존가치의 간섭을 받지않는 사회적 정신적 시스템도 모두 하나의 사막이 됩니다.

이곳에 홀로서서 자유로움을 갈구하고, 새로운 샘을 찾고, 두려움에 익숙해지고, 정서적 피곤함을 받아들이며, 낮설음의 미학을 재구성 합니다.

10년전 한국에서 했던 제 개인전의 제목이 "사막엔 목동이 없지" 였습니다.

제 삶에 또 제 작품에 큰 전환점이 필요했던 이 시기에 10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전 또다른 사막에 다시 서있습니다. 저의 자화상은 빈공간에 덩그러니 떠있는 바윗덩어리와도 같습니다. 오랜시간 바람과 물에 깎여 형상은 변할지라도 기본적인 구성물질은 변하지않고 존재하는 나와 다르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개의 전시 공간엔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사막을 주제로한 작품들을 구성하였고 마지막 4번째 공간엔 2019년 'MUSÉE NATIONAL D'ART ASIATIQUE GUIMET /기메미술관'에서 선보였던 드로잉 설치 작품을 공간에 맞게 재구성하여 담았습니다. "TISSAGE/직조" 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한 공간 안에 평면과 거울 그리고 관객이라는 서로다른 소재의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합니다. 거대한 드로잉 속의 숲은 유령의 숲처럼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저의 기억속 어린시절의 숲을 대변합니다. 꺼내서 생각할 때마다 덧붙여지는 서사들로 더럽혀진 기억을 인지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자 하였습니다.

 

이 숲 속엔 너무커서 전체를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새의 깃털들로 가득합니다. 도교 철학의 장자가 "바다에 큰물고기가 어느날 하늘을 날고 싶어 오랜시간을 공들여 비늘 하나하나를 깃털로 바꾸고 새로 변하여 날기를 원했는데 몸집이 너무 커 스스로 날 수 없어 태풍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 새가 나 자신과 같아, 제 기억의 숲에 숲이 새를 품은듯 아니면 새가 숲을 품은듯 존재하게 하였습니다. 거울을 통하여 제 기억 밖의 관객들또한 저의 기억의 숲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관객의 부재 혹은 존재에 따라 작품 또한 변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위치와 시각에 따라 작품은 그 형상을 달리합니다. 파편처럼 조각난 우리의 기억이 꺼내 볼 때마다 외부적 요인이 사슬이 되어 그것들의 조각을 재구성하며 서사를 덧붙이듯이. 이렇듯 이번 전시의 모든 공간엔 형상을 달리하며 존재하는 저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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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 2 - diptyque, 2022 / photographié par Thierry Estrade

 

 

최근엔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나요?

 

예전의 제 작업은 오랜시간 계획되고 짜여져서 모든걸 스스로 컨트롤 하려고 했었어요.  오랜시간 다듬으면서 불안감을 그림 속에 쏟아내며 애써 그렇지 않은듯 두려움을 시간으로 극복하려 꾸며나갔던 것 같습니다.

2011년 아이를 임신했을 때 화학재료를 쓰지 않으려 페인팅 보다는 드로잉을 많이했습니다. 드로잉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여백의 여유를 즐기고 계획되지 않은 수채화의 흘러내림과 번짐의 우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학생 때 읽었던 책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기분처럼요. 모든걸 컨트롤하려던 습관에서 멀어지면서 공간이 확장되고 열리는걸 느꼈습니다. 계획되지 않은것의 아름다움이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끌기 시작했고 재료적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2차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재료들은 '어떻게'를 위한 것 보다는 '무엇을 말하기 위한' 도구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덕분에 매번 작업을 새로 시작 할 때마다 중요한 짐만 싸들고 이사하는 사람처럼 사색의 집을 옮겨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3년 남프랑스의 툴롱(Toulon)으로 이사를 한 뒤 처음으로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원 가꾸기에 엄청난 몰입을 했던 탓에 꿈에서도 정원을 가꾸고 결국은 계속 정원에 있고싶어 정원과 집의 벽을 허물어 경계를 없애 버렸습니다. 대학시절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빠져 사이버 카페에서 살다시피하며 보낼 때도 꿈에서까지 게임 속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이유로 2013년 부터는 안과 밖, 차원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엔 양자역학의 양자점프, 열역학의 엔트로피, 다중우주속의 차원의 중첩, 시간이 흘러간다는 인간의 뇌가 만든 착각, 공간의 기억, 블랙홀 주변의 사건의 지평선, 기억의 파편과 인위적인 사슬, 고고학적 사고, 노자와 장자 등등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주제나 소재삼아 제 주변의 이치와 저의 경험을 연결지어 사물이나 현상, 사고의 본질과 가까이 가보는데에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엔 내년 5월 깐느 아트센터(Espace suquet des artistes à Canne)에서 있을 개인전을 준비중입니다. '고고학적 사고' '인위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오염된 기억이나 이야기들의 겹을 걷어내면서 본질을 찾아나가는 여정' 을 주제로한 설치, 드로잉, 페인팅, 디지털 드로잉과 음향작업등을 펼쳐보일 예정입니다.

 

작가의 길이 쉽지 않은데, 본인만의 철학이라면

 

정신을 게으르게하는 익숙한 것에서 도망하는것 입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잃지않고 문제를 인식하며 내 스스로 온 힘을 다해 몰입할 수 있을 때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유는?

 

아티스트는 좋은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특별히 콕 찝어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글쓰는 작가로는 버지니아 울프입니다.

 

본인의 좌우명이나 삶의 지표가 있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튀는 공처럼 살아보자 입니다. 어차피 삶은 계획한대로 모두 다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또한 순간순간 생각이 바뀌고 계획이 바뀌어도 두려워않고 그때그때의 새로운 긴장감을 즐기고 싶습니다. 현재에 충실한 튀는 공이 되고자 합니다.

 

요즘 즐겨하는 취미는? 

 

몇 년 전부터 첼로를 배우고 있습니다. 10살된 아들이 트럼펫 연주를 합니다. 트럼펫 솔리스트가 꿈인 아들을 위해 첼로 반주를 맞춰주면서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냅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과제가 있다면... 

 

현재의 제 목표가 앞으로의 목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과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끝으로 소나무 작가협회 또는 재불 예술인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말씀

 

올해 처음으로 소나무 회원이 되었습니다. 철새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 같은게 있었던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품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한 재불 예술인 동료들과는 많은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민정연 개인전 『갈증, 졸리움, 고요로 가득찬 사막』

https://www.francezone.com/xe/hanweeklynews/2255772

 

 

【프랑스(파리)=한위클리】이석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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