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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의 시인이 ‘독(毒)을 차고’ 일제에 항거한 이유
[독립운동가와 해외 후손을 찾아서 4] 김영랑과 그의 셋째 아들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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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영랑의 생가 안채. 본래는 기와집이었으나 강진군의 실수로 초가로 바뀌었다. ⓒ김현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중)


이처럼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있을까. ‘솟아오르는 아침 햇빛을 받아 물결이 은빛처럼 반짝이는 강’같은 청량한 내면을 가진 이는 영랑 말고 누가 있을까. 가장 애송되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 햇발같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내 마음을 아실 이>, <강물>, <가늘한 내음>, <노래>, <달>, <청명> 등 영랑의 시는 한결같이 아름답고 영롱한 세상과 평화롭고 유유자적한 인간의 삶을 관조한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모습을 그는 ‘도른도른’ 이란 정겹고 토속적인 남도 어휘의 조탁(彫琢, 갈고 닦음)으로 그려낸다. 흔히들 영랑을 섬세하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고운 심성으로 노래하는 탐미주의 시인의 전형이라 평한다. 그가 좋아해 마지 않았던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명시 구절처럼 그에게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었다.

영랑 시의 아름다움은 소리를 내어 읽어야만 제맛이 난다. 처음 읽으면 뭉클한 감동에 가슴이 ‘철렁’하고, 한 참 읽다보면 “부드럽고 섬세한 서정이 어느새 운율을 타고” 흐르며 노래가 되고 춤이 된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고 했던 문학평론가 이헌구는 “언어의 격조가 높은 점에서는 영랑은 옥이요, 소월은 화강석이다. 소월의 그 많은 한과 노래는 영랑의 옥저(옥피리)의 여운에 미치지 못하는 바 없지 않다.”라고 했다.

‘추한’ 세상에 반기를 들고

영랑은 1903년 산수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전남 강진에서 탯줄을 끊고 나왔으나, 그가 당장 경험한 세상은 일제에 의해 비틀어지고 어그러진 ‘추한’ 세상이었다. 청소년기에 무용가 지망생 최승희와 목숨을 건 열애에 빠지고, 프랑스 미인 여배우의 그림엽서 한장에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순수미'를 시어(詩語)로 담아내고자 했던 그였다.

나긋하고 달착지근한 서정시를 쓰며 세상을 호호낙낙 살기를 꿈꾸었을 영랑이 사실은 ‘독(毒)을 품고’ 산 시인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삶과 시를 제대로 조망하는 사람들은 그를 ‘시대의 반항아’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잡티 하나 없는 박속 같던 영랑이 ‘자연’을 거스르는 ‘부자연’, 그리고 ‘아름다움’에 반하는 ‘추함’에 처음으로 저항한 것은 불과 14세때였다. 그는 삼일운동 2년 전인 1917년 휘문의숙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종로 네거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주모자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훈방조치 되었다. 아직 솜털이 송송한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요주의 인물로 일제의 감시를 받아야 했던 영랑의 항일정신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맞아 본격 발동한다.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지자 서울에서 몰래 입수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 등을 구두 안창에 숨기고 강진으로 내려온 영랑은 4월 4일을 거사일로 잡아 봉기하기로 친구들과 모의한다. 그러나 거사일 사흘을 앞두고 경찰에 급습당하여 모두 체포되었다. 이번에도 어린 학생(16세)신분이라는 점이 고려되어 6개월 만에 대구형무소에서 석방된다.

영랑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가기를 꿈꾸었으나,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견디지 못한 영랑은 동경유학길에 올라 아오야마학원(청산학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을 만난다. 무정부주의자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과 같은 하숙집에서 교유한 것도 이때다. 영랑의 삼남 김현철의 증언에 따르면, 청년 영랑의 자유의식과 항일정신은 이때 더욱 고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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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문 고보 시절의 김영랑 ⓒ김현철
 

‘독을 차고’ 귀향하다

일본에서 시문학을 공부하며 암중모색하던 영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한다. 관동대지진시 엉뚱하게 증오의 대상이 된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강진으로 돌아온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누워>, <사행소곡7수(四行小曲七首)>,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토속적 서정이 듬뿍 담긴 작품을 쏟아낸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일제의 폭압이 극도로 심해지기 시작하자 저항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특히 1930년 말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집중적으로 저항시를 쏟아내는데, 말랑한 서정시를 쓰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윤동주와 한용운의 저항시에 버금갈 만한 다수의 시편이 그때 발표되었는데, <독을 차고>는 그때 토해낸 시다.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중략)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독을 차고> 중)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30년대 말, 일제는 황국신민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 성씨를 일본식 성씨로 바꾸는 창씨개명을 강요하여 조선인의 혼까지 말살하려 들었다. 일제는 국책문학을 내세우며 천황을 찬양하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의 시를 쓰도록 강요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는 그 당시의 상황을 ‘나라의 지사, 사상가, 종교가, 교육자, 지식인, 문인은 신사 참배하라면 허리가 부러지게 하고, 성을 고치라면 서로 다투어가며 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로라 하는 지도급 인사들은 이에 굴복했다.

영랑은 추한 세상에 빌붙어서 목숨을 구걸하는 세태를 비관.비판하는 한편, ‘독을 차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힘썼다. 데뷔 초기작부터 유독 ‘내마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 온 영랑은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를 갈고 닦아 자연과 세상을 노래하며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억제해 오던 터였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랑은 이리(일제)와 승냥이떼(친일 부역자)가 득실대는 세상에서 ‘독립이고 뭐고 모두가 쓸데없는 짓’이라며 그를 회유하는 친구 조차도 위협하며 ‘독을 차고’ 일제가 지배하던 세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독을 차고>에 이어 <거문고>, <두견>, <춘향> 등에는 그의 결연하고 비장감이 감도는 ‘내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 둘 곳 몸 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한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거문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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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의 생전 모습 ⓒ김현철
 

쓴 대로 살고, 사는대로 쓴 시인

영랑은 시를 쓴 그대로 살았고, 살아간 만큼 시를 썼다. 그가 일찍이 <시문학>에서 고백했듯 “시를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하며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했다. 중국의 대 문호 루쉰이 “머리로 쓴 거짓말은 피로 쓴 진실을 은폐시키지 못한다”고 절규하며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문인들이 머리를 굴려 추한 짓을 할 때, 영랑은 교활한 폭압체제의 실체를 폭로하고 항거했다.

그는 갖은 탄압에도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영랑의 삼남 김현철이 쓴 <아버지 그립고야>라는 책에 기록된 일화에 그의 ‘뚝심’이 잘 나와있다.

일본 경찰이 조선인 가구주들에게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할 때면 영랑은 “내 성명은 김윤식이다. 일본 말로 발음하면 ‘깅인쇼큐’다. 즉 나는 ‘깅씨’로 창씨했다.”라며 당당히 대응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창씨개명을 거부하도록 했는데, 자녀들은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매주 토요일 형사들이 대문을 두드리며 신사 참배를 강요했을 때도 습관성 설사병 등을 핑계로 이리 저리 이를 피했다. 양복을 갖춰 입고 단발을 하라는 명령도 끝내 불복했고, 해방이 될 때까지 한복을 벗지 않았다.

‘외로운 혼’으로 ‘독을 차고’ 살던 영랑은 회유와 협박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지자 홀연 절필을 선언했고, 1940년 <춘향>을 마지막으로 해방이 될 때까지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다. 우리말을 쓰는 것 자체가 죄가 되던 시기에 영랑은 일본어로 된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은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총을 가지고 싸운 독립군이 있는가하면 펜과 종이로 싸운 사람들이 있는데, 영랑은 총칼 대신 펜과 종이로 싸운 독립군이라 할 수 있다. 친일문학연구가임종국 선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친일을 하지 않은 영랑을 ‘일제 저항시인 7인(윤동주, 변영로, 김영랑, 이희승, 황석우, 이승기, 오상순)에 포함시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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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랑 시의 대부분이 탄생한 생가 안채 본래 모습. 1997년까지 우아한 기와집이었으나 강진군의 실수로 초가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복원이 되지 않고있다. ⓒ김현철
 

일제에 펜과 종이로 싸운 시인, 해방을 맞다

‘울들(울지) 못하는 기린(조선)’이 마음껏 목놓아 울 해방이 찾아왔다. 절필을 선언한지 5년 만에 그는 <북>(일명 '치제'), <바다로 가자>, <천리를 올라온다> 등을 통해 해방 조국에 대한 벅찬 기쁨과 희망을 실토하고 현실 참여 의욕을 보인다.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제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저지다 휘모라보아

이러케 숨결이 꼭 마저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중략)

떠밧는 명기인듸 잔가락을 온통 이즈오
떡떡궁! 정중동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잇어
인생이 가을가치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제
(<북> 중)

바다로 가자 큰 바다로 가자
우리 인젠 큰 하늘과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가졌노라
하늘이 바다요 바다가 하늘이라
바다 하늘 모두 다 가졌노라
옳다 그리하여 가슴이 뻐근치야
우리 모두 다 가자꾸나 큰 바다로 가자꾸나
(<바다로 가자> 중)


영랑은 해방 정국에서 한때 순진하게도 대한청년단에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폭력적
상황에 질려 금방 그만 두었고, 이승만 정권에서 공보수석비서관이었던 <성북동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의 권유로 출판국장을 맡았으나 친일파들이 중앙청에 득실대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했다. 일제시대에 입었던 흰색 바지저고리와 검은색 두루마기를 그대로 다려입고 관청에 출근하는 그를 주변에선 못마땅해 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영랑이 경무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은 그의 유별난 결벽증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어느날 영랑이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 집무실을 방문했다. 그런데 집무실 뒷벽 전면을 장식하고 있던 대형 병풍 그림을 보고 금세 얼굴이 굳어졌다. 영랑이 “각하, 어찌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에 일본 금각사를 그려 넣은 병풍을 놓아둘 수 있습니까? 외국인들이 볼까 두렵습니다.”라며 직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이승만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뜨며 “아니, 저게 일본 사찰 그림이란 말인가? 누가 그런 말을 해 줘야 내가 알지. 당장 치우도록 사람을 부르게!”라고 했다.

무질서한 정국과 이승만의 독재에 환멸을 느낀 영랑은 7개월만에 출판국장직을 그만 두었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

영랑은 1950년 한국전에서 유엔군에 맞서며 후퇴하던 인민군이 쏜 유탄에 맞아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해방을 맞은 기쁨에 떡떡궁! 북을 쳤던 영랑은 “찬란한 슬픔”을 안고 일찍 그렇게 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영랑 사후 68년이 흐른 지난 2018년에서야 그의 애국정신을 기려 독립유공 훈장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영랑은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예술인이 받는 금관문화훈장도 지난 2008년에서야 받았다. 전남 강진에 있는 영랑의 생가는 문학인의 생가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순수한 시적 감성으로 추악한 일제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여 ‘독하게’ 그려낸 영랑. 교활하게 거짓을 감추며 더 추해져가는 현재의 일본과 잔류 친일파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시어(詩語)로 이들을 꾸짖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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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랑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49년 여름 신당동 자택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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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랑 사후 58년 만에 추서된 금관문화훈장 증서와 훈장. ⓒ김현철
 

[인터뷰] 아들이 본 영랑, 그리고 대한민국

슬하에 5남 3녀를 둔 영랑은 ‘배 곯게 하는 문학은 절대 안 된다’고 자녀들에게 신
신당부했으나, 두 딸을 제외한 5남 1녀가 글쓰는 일(영문학, 불문학, 언론인, 독문학,
영어학)을 전공하여 교수, 통역사, 언론인 등을 평생 업으로 삼아 아버지의 명을
어기며 살았다.

현재 영랑의 직계 자손 중 셋째 현철, 다섯째 현도, 여덟째 애란(여)이 생존해
있는데, 특히 셋째인 김현철(84) 선생은 전남 강진의 ‘영랑 현구 문학관’ 관
장을 거치며 영랑 시인의 삶의 족적을 관리.보존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김현철 선생은 MBC 본사 기자를 거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미주 동포언론 <한겨레 저널>을 창간한 언론인 출신이다. 도미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독하게 맞서 싸우다 한때 입국금지인물 명단에 오른적도 있다. 그가 7년 전 폭로한 박정희의 성추문 유튜브(‘비운의 여배우 김삼화’)는 5백만 회가 넘는 클릭을 기록하며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는 자유기고가로 <코리아 위클리>와 <서울의 소리> 등에 남북관계와 한국정치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영랑이 뒤늦게나마 그 진면목을 인정받아 항일 저항시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감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지난 2008년의 금관문화훈장에 이어 작년에 독립유공훈장 건국포장을 받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긴다. 장기간 친일파 정권이 지속된 탓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늦게 진실을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좀 안타깝다.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 선친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모두는 아니지만 아버님의 시에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정서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면도 강하다고 본다. 가령 <바다로 가자> 같은 시는 해방정국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나,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예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역시 슬픔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희망의 세계가 암시되어 있다.”

- ‘영랑 시인의 시는 운율적 흐름이 강해 한참 읽다보면 절로 노래가 나온다’는 평들이 많다.
“사실 아버지는 성악가(테너)를 꿈꾸셨다. 어머님과 지역 노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버지의 남도 판소리는 당시 명창들도 놀랄 정도로 수준급이었고, 거문고, 가야금, 북, 양금의 연주 실력도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특히 임방울, 박초월, 이화중선, 임춘앵, 김소희 등 당대의 명창들을 생가에 초청하면 고수를 데려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버지의 북 연주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 선친과 음악에 얽힌 이야기 중 특별한 기억이 있을 듯하다.
“아버지가 서양 클래식뿐 아니라 판소리까지 고전음악을 무척 좋아하셨다. 4살쯤부터였을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는 그 긴 판소리가 끝날 때까지 놓아주지 않으셨다. 미칠 지경이었다. 소변이 마려워도 아버지가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갇혀있어야 했다. 나만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그렇게 컸다.”

- 영랑시인은 일제에 대해 ‘독을 차고’ 사셨으면서도 서정주 등 친일파 시인들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선친이 친일파 시인 서정주와 어울리는 것을 보고 대학생이던 큰 형님이 ‘왜 저런 분과 가까이 지내십니까’라고 종종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11년 연하의 서정주를 지칭하며) 불쌍한 사람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아버지는 매우 인간적인 분이셨다.”

- 선생님이 본 아버님의 성격은?
“이광수, 김광섭, 정지용, 서정주, 박목월 등 선후배 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친은 수줍음을 매우 많이 타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불같이 화를 내는 과격한 면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 출판국장 시절 한글맞춤법통일안 수용 여부로 논쟁이 벌어졌는데, 통일안을 반대하는 이승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절친 김광섭에 뒤틀린 나머지 교자상을 뒤엎고 나온 일도 있었다. 언젠가는 옹졸한 직계 상사가 사사건건 월권을 하자 자리 박차고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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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랑 시인의 삼남 김현철 선생. ⓒ김현철
 

- 선친이 한국전 당시 북한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고들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설령 인민군의 포격에 돌아가셨다고 해도 민족상잔의 비극 앞에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도 북한군을 원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아버님이 한때 잘 모르고 대한청년단에서 활동하신 일이 있으나, 자주통일과 평화통일을 선호하신 분이다. 진보적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선생을 모셔서 결혼식 주례를 서게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여운형 선생이 주례를 설 정도였으면 해방정국에서 좌파 사회주의로 기울었을 법한데…
“큰 형님의 생전 전언에 따르면, 언젠가 일본 유학생 시절 친구들이 ‘자네 같은 엘리트가 택할 길은 우리처럼 사회주의인데 왜 그 길을 따르지 않나?’라고 추궁하며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선친은 ‘사회주의 좋지… 그런데 말야, 자유가 없는게 싫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선친은 같은 시문학파 동료이자 영랑이라는 호를 지어준 정지용과 단 둘이서 금강산 여행을 할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그러나 사상에서 차이가 있어 서로 멀어지며 결국 결별했다. 선친은 자유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 분이셨다.”

"조국은 검찰개혁을 위한 희생물, 검찰이 국민 이길 수 없다"

- 한인사회 일각에서 선생님을 친북인사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을 듯한데.
“(웃으며) 지겹도록 들어온 한심한 소리다, 나 스스로는 누가 뭐래도 선친과 같은 진보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 세대가 받아온 길고 긴 반공교육이 가져온 트라우마 때문에 북을 적대시 했다. 운영하던 신문사에서 김재준, 함석헌, 송건호, 함세웅, 문동환 등 민주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한다.”

- ‘반미주의자’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미국은 독립 후 242년간 200여차례나 타민족을 괴롭혀 왔다.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은 평균 9개월마다 침략 전쟁을 벌인 나라다. 이러한 미국을 보고 친미를 한다면 그게 정상인가? 극심한 빈부격차를 가져오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과 미국을 인권국가로 착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가령 악명높은 관타나모 인권유린의 실상을 안다면 감히 미국을 인권국가로 부르지 못할 것이다. "

- 영랑 시인이 살아있다면 현재의 한일관계에 얽힌 논쟁들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현재의 갈등은 친일파 70년 체제에서 나온 토착왜구 세력과 민족주의 진영간의 싸움이라고 단정한다. 아버지는 결단코 토착왜구 세력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작년에만 해도 잘 풀리는 것 같던 남북관계가 교착국면에 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나.
“문 대통령이 미국의 압박으로 고민이 깊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민족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무르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군사합의서 써놓고 합동군사훈련에 '참수작전'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반드시 전시작전권을 환수해야 한다. 유엔제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금강산 관광 등 우리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으로 야기될 일시적 경제악화를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노력 없이 어떻게 평화통일을 기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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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 『최초ㆍ유일』 한국인 경영 양로원, 『원더미어』 수지원 ...

     [에디 김의 파워인터뷰]    ◈호주 『최초ㆍ유일』 한국인 경영 양로원, 『원더미어』 수지원 원장!  ◈백의 천사출신 원 원장, “고령의 원우들은 나의 행복 동반자”  ◈여느 양로원과 견줄 수 없는 깔끔한 시설과 케어, 6개월여 입원 대기 노인들도...    <전문> 『최초』라는 수식어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단지, 『처음』ㆍ...

    호주 『최초ㆍ유일』 한국인 경영 양로원, 『원더미어』 수지원 원장!     [에디 김의 파워인터뷰] 여느 양로원과 견줄 수 없는 깔끔한 시설과 케어, 6개월여 입원 대기 노인들도...
  • “불자들이 통일가교 되자” 구미강연 file

    로창현대표 ‘北불교강연’ 새터민 주민들도 참석 눈길           “달라진 북녘 모습이 너무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불자들이 통일의 가교(架橋) 역할에 적극 나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해들어 첫 방북강연회를 1월 19일 경북 구미에서 가졌습니다. 제가 북녘땅을 다녀온 이래 총 33번째 강연이지만 이날 강연은 좀 ...

    “불자들이 통일가교 되자” 구미강연
  • ‘총선 선거솔루션 서비스 눈길 file

    이경태박사 인터뷰 이너텍시스템즈 최신솔루션 제공     Newsroh=정현숙기자 newsroh@gmail.com     이경태 박사     “최상의 선거전략을 자신합니다.”   제21대 총선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종합선거솔루션 기업 ㈜이너텍시스템즈가 차별화된 선거 솔루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총선은 연동...

    ‘총선 선거솔루션 서비스 눈길
  • 김은희교수 러문학에세이 출간 file

    ‘프롬나드 인 러시아’     Newsroh=로담爐談 newsroh@gmail.com         한러 수교 30년이 되는 2020년을 맞아 독자들의 주목을 끌 만한 러시아 전문가의 책이 나왔다.   러시아문학과 러시아 문화에 관한 에세이들을 담은 김은희 교수의 <프롬나드 인 러시아>가 화제의 책이다.   <프롬나드 인 러시아>는 2018년 아르코문학...

    김은희교수 러문학에세이 출간
  • 피조물인 인간에게 '영적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

    [인터뷰]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의 저자 오세용 목사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우리 사회에서 '리더십'이라는 주제가 거대 담론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리더십의 부재니 리더십의 위기니 하는 얘기가 튀어 나온다. 특히 리더십의 악용을 특...

    피조물인 인간에게 '영적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
  • '40년 꿈' 이룬 검사 출신 한인회장 이야기

    [이사람] 서민호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이 '은혜'를 갚는 법   ▲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 잠시 포즈를 취한 서민호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 ⓒ김명곤   (올랜도 = 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1978년 초여름, 소년은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탔다. 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땅은 별둘 장군 출신의 대통령이 17년째 부리는 억압적...

    '40년 꿈' 이룬 검사 출신 한인회장 이야기
  • 강명구마라토너 새해 3대 대장정 file

    극동, 한라~백두, 베트남 종주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인류 최초로 유라시아 대륙을 마라톤의 횡단한 강명구 울트라마라토너가 새해 야심찬 3가지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강명구 마라토너는 18일 글로벌웹진 뉴스로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새해를 맞아 백두에서 한라 통일 마라톤과 블라디보스...

    강명구마라토너 새해 3대 대장정
  • Korean Care Desk(The tied agency force of FWD Hong Kong) - ‘... file

    ▲ FWD Hong Kong Korean Care Desk의 언본재 본부장(Head-Korean Care Desk)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다. 흔히, ‘의식주衣食住)가 기본적으로 인식되어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의식주만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정해지지도 않게, 환영하지도 않는데 삶의 여정 속에서 ...

    Korean Care Desk(The tied agency force of FWD Hong Kong) - ‘언본재’ 본부장(Head-Korean Care Desk)
  • 홍콩 의회 의원 – 사틴 지역 '진조양 구의원' file

      지난 11월 24일(일)에 구의원 선거가 뜨거운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선거로 홍콩 유권자 410만 명이 등록하여 거의 3백만 명 투표로 홍콩 역사상 최고 투표율 71.2%를 기록했다. 452명 구의원 중 우리 한국계 의원이 3명이나 당선이 되어 한인사회가 크게 기뻐하고 축하했다.   이...

    홍콩 의회 의원 – 사틴 지역 '진조양 구의원'
  • 소설가 엘리자 슈아 뒤사팽 ''글쓰기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프랑스와 스위스, 벨기에 등 불어권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들을 찾아 이들의 작업 활동과 삶을 인터뷰하고자 한다. 대부분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로 현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이나 재불한인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 첫번째로 Elisa Shua Dusapin을 만났다. 올해 27세인 (1992년생)...

    소설가 엘리자 슈아 뒤사팽 ''글쓰기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한국문화 확산의 전초기지로...''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은 지난 7월, 프랑스에 부임하기 전까지 예술의 전당에서만 30년을 일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섭외와 진행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전당 모든 프로젝트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경험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 받았으며, 또한 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운영에 ...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한국문화 확산의 전초기지로...''
  • “미주불자들 남북화합의 가교” 로창현대표 file

    뉴욕원각사 방북강연회     Newsroh=민병옥기자 newsroh@naver.com         “북녘 어디에나 명산고찰(名山古刹)이 있습니다. 미주동포 불자들이 남북화합의 가교(架橋)가 되길 바랍니다.”   미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 사찰 뉴욕원각사에서 24일 ‘통일기러기’ 로창현 뉴스로 대표기자의 방북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강연은 ...

    “미주불자들 남북화합의 가교” 로창현대표
  • ‘IOC, 도쿄올림픽 전범기 금지하라“ 최윤희회장 file

    뉴욕한인학부모협회, 바흐위원장에 서한 ”방치하면 베를린올림픽 나치기 재현될 것“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욱일전범기를 방치하면 1936년 나치기의 악몽이 재현될 것이다!”   일본전범기(욱일기) 퇴치운동에 앞장서온 뉴욕한인학부모협회(회장 최윤희)가 IOC(국제올림픽위원회)토마스 바흐 위원장...

    ‘IOC, 도쿄올림픽 전범기 금지하라“ 최윤희회장
  • ‘모란’의 시인이 ‘독(毒)을 차고’ 일제에 항거한 이유

    ‘모란’의 시인이 ‘독(毒)을 차고’ 일제에 항거한 이유 [독립운동가와 해외 후손을 찾아서 4] 김영랑과 그의 셋째 아들 김현철   ▲ 전남 강진 영랑의 생가 안채. 본래는 기와집이었으나 강진군의 실수로 초가로 바뀌었다. ⓒ김현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

    ‘모란’의 시인이 ‘독(毒)을 차고’ 일제에 항거한 이유
  • 한러커플 4남매 모스크바한국학교 졸업시킨 김원일대표 file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모스크바 한러커플’로 잘 알려진 김원일(53) 전 모스크바한인회장과 김 나탈리야(40) 고등경제대 교수의 4남매가 모스크바한국학교를 차례로 졸업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원일-김나탈리야 부부는 최근 뜻깊은 행사를 치렀다. 모스크바한국학교에서 열린 모코스 페스티...

    한러커플 4남매 모스크바한국학교 졸업시킨 김원일대표
  • “불매운동 100일, 日역사왜곡 바로잡는 계기” 서경덕교수 file

      Newsroh=로담爐談 newsroh@gmail.com     일본의 역사왜곡(歷史歪曲)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지난 100일간의 일본 불매운동을 돌아보며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 좋은 계기도 마련됐다"고 11일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예전의 불매운동은 몇몇 시민단체가 먼저 주도했다면 이번 불매...

    “불매운동 100일, 日역사왜곡 바로잡는 계기” 서경덕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