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철교수 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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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1월 16일 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 특강.jpg

 

 

러시아 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에서 지난 16일 한국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국학 특강이 개최됐다.

 

특강은 카잔연방대학교 한국학중핵사업 사업단장인 고영철 교수(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교수)가 진행했다. 이 대학은 1931년에 볼고그라드에 최초로 설립된 대학으로 한국 관련 특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본관 2층 31호 세미나실에는 30명의 러시아인과 고려인 학생들이 2시간 동안 한국에 관한 내용과 한국 유학에 대한 내용을 경청(傾聽)하고 질의를 했다. 이날 참가한 학생들은 역사학 전공 학생을 중심으로 한국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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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 특강

 

 

2019년 6월 1일부터 시작된 카잔연방대 한국학중핵사업은 따따르스탄과 러시아중남부 지역의 한국학진흥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강에서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 지정학적 상황, 고조선부터 현재까지의 간단한 역사, 한국의 전통문화, 예술, 한국어, 태권도, 음식, 한복, k-POP과 한류, 한국유학에 대해 간략하게 PPT와 동영상을 이용하여 참석자들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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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 한국학 특강

 

 

볼고그라드 지역에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즈공화국 등에서 이주한 고려인들과 중국동포 4만여명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볼고그라드 지역 대학에는 한국어 과정이 없으며, 단지 한글학교 6개가 한국어 보급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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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 전경. 좌측 김이고릐교수. 우측 고영철교수

 

 

아울러 알렉산더 코로트코프 총장, 외국어대학장 나제즈다 빤첸코, 역사대학장 엘레나 볼로또바,역사학과장 다찌아나 예브드끼모바, 평생교육대학장 등과 이 대학에서의 한국학 진흥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알렉산더 코로트코프 총장은 추후 제2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개설과 한국역사과목 신설 그리고 이 지역의 고려인 문제를 연구할 한국학연구소 설립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정부의 교재 지원과 한국어 강의 인력지원 그리고 연구소 설립 후 운영비 보조 등의 요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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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국립사회-교육대학교 알렉산더 코로트코프 총장

 

 

현재 볼고그라드에는 1985년에 설립된 볼고그라드국립대학교와 볼고그라드공과대학교, 볼고그라드의과대학교 등 4개의 종합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고영철 교수가 볼고그라드국립대학교를 방문하여 알렉세이 수스로프 평생교육대학 학장과의 면담을 통해 학부에 한국어 과정 개설과 한국학센터로의 발전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수스로프 학장은 한국어와 한국학 관련 연구팀을 구성하여 실천해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披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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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국립대학교 알렉세이 수스로프 평생교육대학 학장. 권주영 볼고한글학교교장. 고영철교수

 

 

고영철 교수는 “향후 볼고그라드 지역에 한국어와 한국학 교과목에 대한 개설이 이뤄지면 이 지역 고려인 교육 발전과 지역민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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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볼고그라드의 옛 이름 스탈린그라드

 

 

볼고그라드는 볼가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길게 형성된 인구 100만명의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1925년 스탈린그라드, 1961년 볼고그라드로 개명되었다.

 

볼고그라드에는 러시아 전쟁사의 3대 대첩의 하나인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스탈린그라드 전쟁 기념관(War Memorial of Stalingrad)이 있다.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핀란드, 이탈리아의 군인 350만명을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로 분산 침투시켰다. 1942년 8월23일 독일 육군과 루마니아군 33만명이 스탈린그라드를 대규모 공습했다. 인구 60만명의 러시아 중심 산업도시였고 운송의 중심 그리고 석유의 공급로의 역할 때문에 중요 요충지라고 생각해서였다. 이후 독일의 기갑부대는 시가지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강변으로 밀려난 러시아군은 진지를 구축하고 남북으로 협공을 하여 독일 기갑부대는 포위를 당하자 구출할 수 없기에 1943년 1월 31일에 독일 파울루스 원수는 항복(降伏)했다.

 

이 전쟁의 전사자는 소비에트 군인 478,741명, 독일은 약 30만명, 독일 동맹국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약 20만명, 도시 거주자 시민 수만 명이었다. 이후 독일군의 기세는 약화되어 세계 제2차대전 종식(終熄)의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기념관에는 북한에 1957년 소련에 보낸 공산주의 건설 등에 대한 축문과 칼 막스의 어록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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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칼 막스의 어록. 중앙은 북한의 축문

 

아울러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얄타에서 연합국의 지도자들인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극동 문제에 대한 비밀 의정서를 채택했는데, 소련이 독일 항복 후 2-3개월 이내에 대일전 참전과, 그 대가로 연합국은 소련에 1904~1905년 러-일 전쟁에서 잃은 영토의 반환, 전후의 한국문제가 포함된 논의에 대한 기사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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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얄타회담의 주역 3인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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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10일자 소련 일간지 '붉은 별'의 얄타회담 기사

 

 

아울러 이 도시에는, ‘마마이 민족의 칸의 이름’ 이라는 인명인 마마예프와 무덤 위의 언덕이라는 단어인 꾸르간의 합성어인 ‘마마예프 꾸르간’이 있는데, 여기에 러시아의 조형물 중 4번째로 큰 볼고그라드를 상징하는 ‘로지나-마찌(조국 어머니)’ 이라는 뜻의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은 1967년 스탈린그라드 전쟁 승리 25주년 기념으로 건립된 높이 87m의 볼고그라드의 실존 인물인 발렌티나 이조토바 라는 여인이 장검을 들고 전투를 독려(督勵)하는 입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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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쟁기념관의 전쟁 파노라마 앞